대한민국 '비철금속 업계의 거목'인 최창걸(사진) 고려아연 명예회장이 10일 회사장을 마치고 영면에 들어간다. 향년 84세를 일기로 지난 6일 별세한 최 명예회장은 '사업보국' 원칙과 기업가 정신으로 고려아연을 국가기간산업 대표 주자이자 글로벌 공급망 중추로 키워냈다.
최 명예회장은 자원 빈국이자 제련 불모지인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산업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철금속산업과 제련업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돈도, 기술도 부족했지만 성공에 대한 확신과 비전이 최 명예회장을 움직였다.
최 명예회장은 고려아연 창립에 앞서 온산제련소 건설을 추진하는 데 매진했다. 1973년 정부는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을 수립하면서 울산 온산에 비철금속단지를 건설하는 방침도 결정했다. 최 명예회장의 부친 최기호 창업자는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동시에 제련업이 국제적 규모로 성장하는 기회라고 판단했다.
미국에서 유학 후 직장 생활을 하던 최 명예회장은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도와달라'는 최기호 창업자의 편지를 받고 1973년 10월 귀국했다. 이후 온산제련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국민투자기금, 산업은행 등 국책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세계은행 산하 IFC와도 접촉해 차관을 도입했다.
IFC는 온산제련소 건립에 소요되는 자금이 약 7000만달러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최 명예회장은 5000만달러에 해낼 수 있다고 설득했다. 건설 비용을 효율화하기 위해 종합건설회사와 턴키 계약을 맺지 않고 구매에서 건설까지 직접 수행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IFC 전망치 7000만달러보다 훨씬 적은 금액인 4500만달러로 온산제련소를 건립했다.
최 명예회장은 회사의 발전에 필요하다면 선제적으로 투자하면서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지닌 인물이었다.
최 명예회장은 1980년대 후반 연 제련 사업 진출을 회고하면서 "연 제련은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소결-용광로 공법을 채택해오고 있었으나 환경문제가 중요하게 대두하고 있어 새로운 공법으로의 전환 필요성이 높았다"며 "당시 개발된 신공법들이 모두 상업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우리는 과감하게 기존 공법이 아닌 신공법을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사장과 부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생산시설을 확장하는 데 힘썼다. 세계 최초로 아연·연·동 제련 통합공정을 구현하고, DRS(유기적 통합 연제련) 공법을 국내외를 통틀어 처음으로 상용화해 적용하며 고려아연만의 독보적 경쟁력을 구축했다.
최 명예회장은 아연에 국한하지 않고 연, 귀금속 등 비철금속 전반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종합 비철금속 회사'로의 도약을 꿈꿨다. 밑그림을 현실로 만들고자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에 집중했으며,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선제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최 명예회장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장례는 회사장으로 치러지며 이제중 고려아연 부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영결식은 10일 오전 8시에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고려아연 본사에서 비공개로 진행하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유중근 경원문화재단 이사장 등 유가족 등과 이제중 부회장 등 고려아연 임직원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고인의 장지는 민주화 유공자들이 많이 묻힌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에 마련됐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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