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업계가 소상공인과 중·저신용자 지원을 강조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기조에 발맞춰 200억원 규모의 상생 기금을 조성한다. 수익성 악화로 부담을 느끼지만 '상생 금융'에 동참하기 위해 나섰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업에 참여한 9개 카드사(삼성·신한·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NH농협)는 소상공인 취약 차주 지원을 위한 '햇살론 카드' 상생 기금 마련을 논의하고 있다.

햇살론 카드는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연 가처분소득 600만원 이상인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신용카드 발급을 지원하는 정책 상품이다.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워 할부·포인트 등 이용 혜택에서 소외된 저신용자들을 도와 신용카드 발급을 지원한다.

카드사들은 200억원 규모로 상생 기금을 조성할 예정이다. 카드사별 분담 비율은 논의 중이다. 이 출연금은 햇살론 카드 재원으로 활용되고 서민금융진흥원이 보증을 선다. 예상 보증 공급액은 1000억~2000억원 수준으로 전망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신용카드 사업 자체가 소상공인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소상공인 지원을 전면에 내세운 정부의 상생 기조에 발맞추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소비쿠폰 사업으로 카드 결제액이 늘었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얻은 수수료를 다시 환원하자는 취지다. 정부는 소비쿠폰 도입을 앞두고 가맹점 결제 수수료율 인하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카드사들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난색을 보이며 실행되지 않았다. 대신 상생 기금 조성에 동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카드업계에서는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가 관측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8개 전업 카드사(삼성·신한·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의 상반기 순이익은 1조225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3% 감소했다.

가맹점 수수료율의 연이은 인하로 본업인 카드 수수료 수익성 악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2012년 적격 비용 제도를 도입한 이후 가맹점 수수료율은 계속해서 하락했다. 올해도 2월부터 연 매출 30억원 이하 영세·중소 가맹점의 수수료율이 0.05~0.1%포인트(p) 인하됐다. 이번 인하로 전체 카드사의 연간 수수료 수입은 약 30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공공성을 지닌 소비쿠폰 사업에서도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은 대부분 우대 수수료율이 적용되는 곳이다. 관련 인프라 구축까지 고려하면 역마진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 잡은 카드론 역시 주춤하고 있다. 정부가 6·27 대책에서 카드론을 신용대출로 묶어 대출 규제에 포함된 영향이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9개 카드사(삼성·신한·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BC·NH농협)의 카드론 잔액은 42조4483억원으로 전월 말(42조4878억원) 대비 395억원이 감소했다. 6·27 대책 이후 3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또 이찬진 금감원장은 지난달 16일 여신전문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에서 "최근 상승하는 연체율 등을 감안해 여전사의 건전성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연체율 관리를 위해선 카드론 영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상공인 지원 취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등의 영향으로 최근 카드사들의 실적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비용 절감으로 버티고는 있지만 한계에 직면한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저신용자들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의 취약 차주에 대한 지원 취지에는 공감하나 일방적·반복적 지원을 기대하고 고의적으로 원리금 변제를 회피하는 등의 도덕적 해이가 염려되는 상황"이라면서 "보다 세심하고 면밀한 지원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최정서 기자 emotion@dt.co.kr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여신전문금융업권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16일 서울 중구 여신금융협회에서 열린 여신전문금융업권 CEO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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