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재무당국, 환율정책 합의문

“환율, 시장에 맡긴다” 기본 원칙 재확인

유리한 무역조건 위해 통화 조작하지 않기로…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해소”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주유엔 대한민국대표부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면담을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한미 양국이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이 과도하게 불안할 때만 고려하기로 했다. 환율은 기본적으로 시장에 맡긴다는 기본 원칙도 재확인했다. 무역 경쟁을 위한 통화 가치 조작도 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는 이번 합의로 미국의 환율조작국 우려가 사실상 해소됐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환율 급등락 시 외환 당국의 개입이 어려워 시장 불안이 우려돼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에 주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1일 이 같은 내용의 환율정책 합의문을 발표했다. 한미 간 환율정책은 지난 4월 미국 측의 요청으로 '2+2' 통상협의 의제에 포함됐지만 관세 협상과 구분해 재무 당국 간 고위·실무급 협의에서 논의돼왔다.

한미 재무당국은 이날 합의문에서 "효과적인 국제 수지 조정을 저해하거나 부당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국 통화가치를 조작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 공감하고 재확인했다.

이는 한미 양국이 무역수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위적인 통화가치 조작을 하지 않겠다는 데 뜻을 같이 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이번 합의문에 거시건전성 또는 자본 이동과 관련한 조치는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정부 투자기관의 해외투자는 위험조정과 투자 다변화 목적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양국이 재확인한 셈이다.

다만 우리 측에서 우려했던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 관련 언급은 합의문에서 빠졌다.

당초 미국 측이 제시한 초안에는 포함됐지만 정부 측의 설명과 설득으로 최종안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6월 의회에 보고한 환율 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하면서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를 원화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언급했다.

외환당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과 650억달러 규모의 외환 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는데 이를 '시장 개입'의 사례로 지목했다.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이나 무질서한 움직임에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고려돼야 한다는 내용도 합의문에 담겼다. 환율의 방향에 관계없이 대칭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통화가치 절하·절상 중 어느 한쪽의 경우에만 개입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현재 분기별로 공개되는 시장 안정 조치는 대외 비공개를 전제로 월별로 미국 재무부에 공유하기로 했다.

월별 외환보유액과 선물환 포지션은 국제통화기금(IMF) 양식에 따라 공개한다. 이는 이미 정부가 이행 중인 내용이다. 연도별 외환보유액 통화 구성 정보도 공개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 내용은 현재 정부의 환율 정책 기본 원칙에 부합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기재부의 평가다. 기재부는 이번 합의로 미국의 환율조작국 우려가 사실상 해소됐다고 보고 있다.

정여진 기재부 외화자금과장은 "일본, 스위스 등 유사한 틀을 갖고 각 나라와 합의했지만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달라서 거기에서 변형된 방식으로 합의를 했다"며 "'안정'이 들어간 것은 우리나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합의에 따라 우리나라가 환율조작국으로 조정되게 될 가능성은 없다"며 "다만 이건 11월 환율보고서가 나와야 알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환율조작국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그보다 낮은 단계인 '환율관찰 대상국'에 포함돼 있다. 앞서 환율관찰 대상국에서 빠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11월 환율보고서 발표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정부는 이번 환율 합의를 계기로 미국이 무제한 통화스와프 체결에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양국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맡기고 상대국 통화를 빌려 쓸 수 있도록 한 통화 간 교환 계약을 말한다. 위기 상황에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달러 유동성을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더구나, 미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하길 요구한 상황에서 통화스와프 체결이 안 되면 외환시장에 미칠 충격이 커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로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환율 급등락시 우리 외환 당국의 개입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 당국의 개입 여지가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시장 변동성이 커진 것으로 불 수 있다"며 "이번 환율 합의로 신뢰가 쌓인만큼 무제한까지 아니더라도 상당 수준의 통화스와프 체결을 노력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원승일 기자 wo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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