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박한나의 배터리ON’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배터리 분야의 질문을 대신 해드리는 코너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을 비롯해 배터리 밸류체인에 걸쳐 있는 다양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낱낱이 전달하고자 합니다.
지난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정부와 민간을 동시에 뒤흔들었습니다. 사고 발생 후 사흘이 지났음에도 행정정보시스템 647개 중 73개만 복구됐습니다. 정부 부처 전반의 업무와 민원 처리 시스템이 지연돼 국민 불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화재 원인 ‘전원’ 미차단 상태 추정…LG엔솔 배터리 결함無
화재의 원인 규명이 시작되기도 전에 정치권은 책임 공방에 몰두했습니다. ‘배터리 화재’라는 자극적인 프레임을 앞세웠습니다. 여론은 이미 배터리 자체가 이번 재난의 고질적 원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다른 배터리 화재 사건과 본질이 다릅니다. 아직 원인 규명이 진행 중인 만큼 섣부른 단정은 이르지만 이설공사 과정에서 무정전·전원 장치(UPS) 전원을 차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케이블을 해체하다가 불이 난 작업 과정의 실수로 추정됩니다.
이번에 화재가 난 UPS용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이 2014년 8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납품한 제품으로 지난 10년간 안정적으로 운영됐습니다. UPS용 배터리는 지금까지 화재 사고가 발생한 적도 없습니다.
사건 초기에는 권장 사용 연한(10년)을 1년 이상 초과했다는 이유로 ‘노후화된 배터리’가 화재 원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UPS용 배터리들은 지금보다 더 보수적인 설계와 안전성 확보 특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실제 LG CNS도 지난해 6월 점검에서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방전 절차 누락됐다면…UPS 화재는 인재
전문가들은 UPS용 배터리의 ‘방전 작업’ 미이행 가능성을 화재 요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동 설치시 방전 작업을 진행한 뒤 작업하는 것이 배터리 제조사 매뉴얼이자 안전 관행인데 이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박철완 서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불이 났다는 것은 충전상태(SOC)가 높았다는 것이고, 방전 작업을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라며 “SOC를 50% 이하 구간으로 낮추기만 해도 화재 위험이 거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영준 성균관대 성균나노과학기술원 교수도 “방전 방법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라면서 “방전을 하면 화재 사고가 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만약 방전 절차를 별도로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됐다면 인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방전을 하지 않으면 내부에 축적된 전기에 의해 전력을 미리 차단해도 스파크가 발생해 대형화재로 이어지는 수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UPS는 평상시 메인 전원에 연결된 상태로 대기하고 정전 등 비상 상황이 생기면 즉시 비상 전원으로 전환되는 시스템입니다. 전산 시스템이나 관리 소프트웨어로 SOC를 낮추는 작업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정부 “자격은 있었다”…그러나 경험·이력 검증 필요
이에 따라 사고 당시 현장에 투입된 업체들에 대한 전문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당시 화재 현장에 투입된 인력은 8명으로 전기 제어장치 회사인 ‘일성계전’과 배터리 교체 작업을 하는 협력업체 ‘내일파워’ 등 3개사 소속 직원들입니다.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은 지난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정자원 관련 화재 브리핑을 열고 “무자격 업체가 배터리 운반에 투입됐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릅니다”며 “배터리 이전 준비 중 화재가 발생했고 작업자는 자격을 보유한 전문 기술자이자 화재 부상자”라고 해명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 투입 의혹을 부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의구심이 줄어들지 않는 것은 해당 업체들이 대형 데이터센터 UPS용 배터리 교체·이송 같은 고난도 작업을 전문적으로 수행해온 경험이 충분한지 이력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기공사업을 영위하는 일성계전은 대전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입니다. 리튬전지 도소매업으로 등록된 내일파워 역시 경기도 남양주에 주소를 둔 업체로 확인됩니다. 기업 규모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서 기본 절차를 소홀히 했다면 업체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입찰 관행 책임론…업계 “반복되는 배터리 탓” 울상
정부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험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작업임에도 안일하게 비용만 보고 입찰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입니다. 통상 국정자원이 발주하는 용역은 일반적으로 국가계약법에 따라 경쟁 입찰을 진행합니다. 장비 이송이나 설치 같은 사업은 통상 최저가 낙찰제나 적격심사제가 적용됩니다.
현재 가장 전전긍긍하는 곳은 배터리업계입니다. 이번 주말 내내 사회적 논의가 ‘배터리 화재’라는 프레임에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배터리 화재라는 프레임이 굳어지면 제도적 관리 실패나 작업자의 과실이 원인일 수 있지만 ‘제품 결함’이 유일한 문제처럼 결국 인식됩니다.
지난해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역시 초기에 ‘배터리 발화’로 보도됐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원인은 전기 단락(쇼트)였고, 배터리 자체의 결함은 아니었습니다. 초기 여론의 방향과 완전히 달라졌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배터리는 위험하다’는 인식만 남게 됐습니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캐즘에 이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종료, 미국과의 비자 문제, 중국 업체들의 추격에 더해 이제는 매년 반복되는 화재 사고까지 겹치고 있습니다. 불이 나면 곧바로 배터리 문제로 굳어지는 인식이 제일 걱정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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