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일각에서 연일 반미(反美)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관세 협상과 관련해 ‘대미 투자금 3500억 달러 선불’을 요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내용이지만, 한미 동맹의 균열을 부를 수도 있는 극단적 언급도 포함돼 있어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고 있다.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9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선불 청구를 “한국판 플라자 합의 (요구)이자, 전범국에나 물리던 묻지마 배상금”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결코 동맹 간 정상적인 협정이라 볼 수가 없다”며 “대한민국 국회는 이런 불평등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국민주권을 짓밟는 협박에 전국민 저항이 따를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한다”고 했다. 플라자 합의는 1985년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엔화 가치를 올리도록 한 것이다.
앞서 민주당 강성 친명(친이재명계) 모임인 더민주혁신회의는 27일 “3500억 달러 현금 요구,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파산시키려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도 정도가 있다. 미국이 안보동맹국이자 경제동맹국인 한국을 마치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민주혁신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전국 동시 다발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얼토당토 않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다. 더민주혁신회의는 2023년 6월 출범한 민주당 소속 전현직 의원이 모인 강성 친명계 모임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2일 유엔총회 참석에 앞서 가진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간)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 요구 방식으로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페이스북에는 “외국 군대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건 굴종적 사고”라는 글을 올렸다. 대한민국에 주둔하는 외국 군대는 미군뿐이어서, 미군이 없어도 자주국방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미국이 없어도 괜찮다”는 뉘앙스의 이런 격앙된 분위기는 관세 협상에서 트럼트 대통령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야당도 아닌, 여당이 대한민국 최대의 수출시장이자 안보 파트너인 미국에 대해 할 말 못할 말 다하는 건 결코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 ‘소아병적’ 행태일 뿐이다. 말로만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몸을 낮출 줄도 아는 게 국정을 책임진 정부와 여당의 책무다. 이런 한국내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에 보고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관세 협상이 일본이나 유럽연합(EU)에 견줘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당 일각의 반미 움직임은 한미 동맹의 균열과 안보 위기를 부를 자충수다. 거대 여당은 국익을 위해서라도 보다 신중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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