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환 KAIST 경영공학부 교수

지난해 11월 디지털타임스가 주최한 미래포럼의 주제는 ‘ESG와 밸류업, 기업의 길을 묻다’였다. 당시 학계, 정계, 재계에서 열리는 행사에서도 ESG가 주연 또는 조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최근 대표적인 검색 트렌드 사이트가 제공하는 통계를 살펴보면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관심도는 과거 가장 높았던 시점에 비해 60% 선으로 크게 떨어져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지정학적 불안, 고금리·고물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눈앞의 생존 전략에 더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고, 자연스레 ESG는 뒷전으로 밀린 듯한 인상을 준다. ESG라는 단어 자체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간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간의 유행과 관계없이 기후변화 대응, 산업재해 방지, 자본시장 선진화 등 ESG가 지향하는 본질적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 경제와 사회가 직면하고 추진하는 핵심 의제이며, 다른 구실을 대며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홍수를 이루던 ESG 담론이 잠잠해진 것은 오히려 ESG 경영이 본연의 취지에 맞는 방향과 경로를 되찾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때 ‘ESG 파고’라는 표현이 언론에 등장할 만큼 기업들은 ESG를 큰 부담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ESG에 대한 이해나 의지가 부족하고 준비가 안 된 기업들이 이를 규제성 압력으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본질보다는 표면적인 겉치레, 심지어는 속임수를 짜내는 데 골몰하게 되면서 소위 ‘그린 워싱’, ‘ESG 워싱’으로 불리는 부작용이 만연했다.

그러나 한때 뜨겁게 달아올랐던 ESG 열풍이 한풀 누그러진 지금이 오히려 실질적으로 ESG 경영의 고도화를 기대할 수 있는 시기가 될 수 있다. 사업이나 조직 측면에서 다양한 특성을 지니는 기업들을 정부나 사회가 일률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은 당연히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기술혁신이나 글로벌화가 필요하다고 해서 기업들에게 동일한 정답지를 제시할 수 없듯이, ESG 경영 역시 기업들이 대상, 목적, 수단, 속도 등을 각자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제한된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 영역이다. 외부로부터 강요된 형식은 오래가지 못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전략은 기업의 체질로 내재화될 가능성이 크다.

PwC, MSCI 등의 분석에 따르면 친환경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실제 수요와 가격 지불 의사로 연결된다거나, ESG 성과가 높은 기업들이 낮은 비용으로 자본을 조달한다는 가설이 꾸준히 검증되고 있다. 따라서 자사의 비전과 상황에 맞추어 현명한 ESG 경영 전략을 수립, 실행하는 능력이 탁월한 기업은 자발적으로 그 길을 걸으며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높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ESG보다는 다른 부분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기업은 위선적, 가식적인 방식을 쥐어짜느라 무리하다 자원을 낭비하거나 ‘워싱’ 의혹으로 되레 평판이 추락하는 화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ESG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성과를 거둔 기업들의 사례는 이미 많다. 애플은 공급망 전반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며 ‘탄소중립 2030’ 목표를 구체적 실행과제로 제시했다. 단순한 환경 규제 대응이 아니라, 글로벌 소비자와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고 장기적으로는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BASF 등 화학기업들은 친환경 공정을 도입해 초기에는 비용이 늘었지만, ‘저탄소 인증 제품’을 앞세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경쟁우위를 확보했다.

국내에도 주목할 사례들이 꽤 있다. 한 가전회사는 폐제품 회수·재활용 프로그램을 강화해 자원순환구조를 구축했다. 이로써 환경규제 리스크를 줄였을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해 글로벌 유통사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얻고 있다. 한 건설회사는 산업재해 예방을 ESG 경영의 핵심 의제로 삼아 안전 관리 시스템을 전사적으로 혁신한 결과 산재율을 획기적으로 낮췄고, 이를 통해 공공 발주 입찰 경쟁에서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다. 한 자산운용사는 지배구조 투명성과 리스크 관리 역량을 높이면서 해외 연기금 등 대형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이는 ESG 활동이 불가피한 비용 지출이 아니라 실질적 경쟁력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매출 및 수익의 문을 여는 열쇠로 작동한 사례들이다.

이제 ESG에 대한 기업 내·외부의 평가 기준은 보고서의 두께가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고 있는지가 되어야 한다. ‘ESG 활동을 얼마나 했는가’가 아니라 ‘ESG를 어떻게 본연의 사업 및 조직과 스마트하게 결합시켰는가’가 관건이다.

ESG를 전략적 기회로 삼아 새로운 시장과 신뢰를 창출하는 기업이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이끌어갈 주역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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