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태 디지털콘텐츠국 부장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아침마다 무거운 소식이 들려온다. 이스라엘이 가자시티 장악을 위해 지상전에 돌입하면서 이 땅의 비극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열린 베네치아 영화제에서는 한 편의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영화 ‘힌드 라잡의 목소리’는 피란길에 차량에 홀로 남겨진 여섯 살 아이 힌드가 휴대전화로 “와서 도와달라”고 외치는 실제 이야기를 담았다. 힌드의 절규 뒤에 곧바로 총성이 울리고, 이내 침묵이 이어진다. 죽음이 일상이 돼버린 가자지구의 현실이다.
2024년 기준 약 214만명이 살고 있는 가자지구는 면적이 360㎢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13번째로 인구밀도가 높다. 유니세프 통계에 따르면 이 비좁은 땅에서 매일 한 교실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집이라는 안식처는 사라지고 폭격과 이별만이 난무하는 곳. 가자지구에서는 그 누구도 이 비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자지구의 고통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48년 이집트 군정, 1967년 이스라엘 점령, 이어 오랜 봉쇄와 실업은 주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특히 2006년 하마스 집권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돼 대부분의 주민은 외부 원조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심지어 물의 95%가 오염돼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 외부 세계는 가자지구를 ‘테러’나 ‘군사작전’이라는 단어로만 바라보는 데 익숙해져 있을 뿐이다.
전쟁은 일상의 온기를 앗아가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은 주민들을 남쪽으로 내몰았고, 마지막 피난처였던 남쪽 라파마저 공격 대상이 됐다. 이번 지상전이 최장 6개월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군 내부 전망이 나오면서 이 비극이 얼마나 길어지고 얼마나 잔혹할지 짐작케 한다.
죽음은 평범한 거리를 채우고 보복의 악순환을 낳는다. 최근 예루살렘 도심에서는 버스 총격 테러로 이스라엘인 6명이 희생됐다. 하마스는 이를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구조대원, 언론인, 구호 인력 역시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숨진 팔레스타인 기자만 247명에 달한다. 이 곳에서 죽음은 숫자로만 기억되고 이름은 잊혀진다.
국제사회는 이번 가자지구 사태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범죄’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나치 독일의 범죄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제노사이드 협약의 피고인으로 지목된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홀로코스트 연구자 오마르 바르토프, 문학상 수상 작가 다비드 그로스만 같은 지식인들이 “내 눈앞에서 집단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제사회도 가자 사태에 우려를 표하며 연대에 나섰다. 최근 프랑스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의 오랜 동맹국이었던 서방 국가들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유엔 193개 회원국 중 148개국이 팔레스타인을 주권 국가로 받아들였다. 지난 7월 G7 국가 중 처음으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고 밝힌 이후 캐나다, 영국, 호주, 벨기에 등도 동참했다.
그러나 평화의 길은 아득히 멀어 보인다. 이스라엘의 ‘전통적 맹방’인 미국이 가자시티 지상전을 용인한 모양새다. 교전이 장기화하면 안팎의 비난 여론은 더욱 커지면서 이스라엘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인근 아랍국가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일각에선 아랍·이슬람권 자체적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준하는 통합군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두 국가 해법’을 촉구하는 여론도 비등해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가자지구를 미국의 신탁통치 하에 두겠다는 발상까지 드러내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하마스에 인질 석방과 휴전 조건 수락을 촉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인질 48명 전원을 풀어주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2500~3000명을 석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하마스의 답변은 아직 없다.
오늘도 가자지구 어딘가에서 또 다른 힌드가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을 것이다. 이 비극은 인간의 존엄성과 국제사회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케한다. 이 고통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다.
김광태 기자 ktkim@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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