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발행액의 30% 밑 문제없어
매년 수천억원 사들여 영업 도와
"선관·충실의무 위반 소지 있어"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계열 증권사가 인수한 채권을 대거 매수했다.
운용 중인 사모펀드나 투자자에게 일임 받은 자산으로 계열 증권사의 채권 발행 영업을 돕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KB자산운용이 펀드나 일임자산을 통해 KB증권에서 매수한 채권은 총 9800억원으로 집계됐다. '투자풀일반사모증권투자신탁' 등 펀드에 3000억원어치 채권을 담았고, 일임자산으로는 6800억원어치 채권을 샀다.
금융투자업규정에 따라 집합투자업자나 투자일임업자는 관계인수인으로부터 매수한 채권의 종목이나 수량 등을 공시해야 한다.
관계인수인은 같은 기업집단에 속하는 계열사를 말한다. KB증권이 인수한 채권을 KB자산운용이 매수할 경우 공시 대상에 해당한다.
한국투자신탁운용도 한국투자증권이 인수한 채권을 사줬다. 한투운용이 한국투자증권에서 매수해 펀드에 담은 채권은 3300억원, 투자일임자산으로 사들인 채권은 2800억원이었다.
이밖에 신한자산운용이 3400억원, 삼성자산운용 2400억원, 키움자산운용 2060억원, 하나자산운용 1500억원, 미래에셋자산운용 1500억원 등 대형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계열 증권사에서 채권을 매수했다. 삼성생명보험도 삼성증권서 1300억원어치 채권을 샀다.
현재 운용사가 계열사로부터 펀드를 인수하더라도 전체 발행금액의 30%만 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해당 규정을 이용해 계열 증권사로부터 매년 수천억원 규모의 채권을 사들여 증권사의 채권 발행 영업을 돕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투운용은 한투증권에서 인수한 '아이지2-1'의 전체 발행 금액 400억원 중 25%인 100억원을 자사 펀드에 담았다. KB운용은 '한국서부발전66-2' 발행액의 28.57%인 200억원을 KB증권으로부터 사들였다.
하나, 키움, 미래운용 등도 발행액의 20% 이상을 계열사에서 사들여 왔다. 일임자산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NH아문디자산운용은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 발행액의 30%를 모두 채워 NH투자증권서 사들였다.
일각에서는 증권사가 채권 발행을 주관하기 위해 시장 금리보다 낮은 금리의 조달 조건을 제시하고, 운용사가 수요예측에 직접 참여해 채권시장의 발행 금리를 왜곡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계열사를 수요예측에 동원해 민간채권 평가회사 평균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주관 지위를 따내고, 유통시장에 물량을 넘기는 사례도 나온다.
특히 올해 상반기 SK그룹과 LG그룹이 주도한 회사채 시장에서 주관 업무를 따내기 위해 증권사가 계열사의 자금을 활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주장은 사실로 나타났다. 지난 2월 발행된 'LG에너지솔루션4-2' 채권 5900억원 중 KB자산운용이 500억원, NH아문디자산운용이 600억원을 계열 증권사에서 사들였다.
운용사가 관계인수인으로부터 매수한 채권은 대부분 발행 당일에 거래가 이뤄졌다. 청약에 직접 참여해 사들인 셈이다. 이에 금융당국이 계열사를 동원한 '캡티브 영업'에 대한 검사에 나섰지만, 우선 제재 없이 관련 제도 개선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현재 운용사를 활용한 영업이 법적 한도를 지키고 있는 만큼 당장 문제삼기는 어려울 것으로 봤다. 다만 여기에 활용한 자금이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인 만큼, 투자자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을 먼저 고려했을 때 선관의무나 충실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선관의무나 충실의무는 업자가 투자자의 이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명시한 것이다. 계열 증권사의 원활한 영업을 위해 향후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해당 채권을 담으면 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운용사에 투자를 일임한 투자자나 사모펀드 수익자에는 개인은 물론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도 포함돼 있다"며 "마치 이를 자신들의 돈처럼 증권사의 영업에 활용하는 것이 지금까지는 관행으로 여겨졌고, 법적 규정도 모두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석 기자 kns@dt.co.kr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