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계에 이상 기류가 뚜렷하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심각한 교착 상태에 봉착했다. 조지아주에 강제 구금됐던 우리 근로자 316명이 귀국한 다음날 미국은 관세 후속 협상을 압박했다. 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했던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14일 사실상 빈손으로 귀국했다. 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만나 한국의 대미 투자 관련 세부 내용 등을 조율했으나 협의 결과에 대한 설명을 일체 내놓지 않았다. 양측이 핵심 쟁점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 양국은 지난 7월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총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진행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었다. 지난달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서도 큰 틀에서 이를 확인했으나 아직까지 일본이나 유럽연합(EU)처럼 무역 합의를 공식 이행하는 내용의 합의서엔 서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러트닉 상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CNBC 방송에 출연해 “일본은 이미 계약서에 서명했다”며 “한국은 관세를 내든지, 협정을 받아들이든지 둘 중 하나”라고 압박 강도를 높였다. 합의 불이행 시 대미 관세가 현 15%에서 25%로 복귀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핵심 쟁점은 한국이 약속한 투자 패키지에서 대미 투자의 구조, 방법, 이익 배분 방식 등 세부 내용이다. 미국은 일본식 ‘백지수표’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시점·분야·방식에 따라 한국이 제한 없이 자금을 집행하는 형태로, 투자처나 금액 배분을 한국이 아닌 미국 측이 전적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측은 양국이 투자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국이 정한 해당 프로젝트에 한국 정부와 기업이 자금을 투입하면, 미국이 인력을 고용하고, 건설을 진행한다. 초기 현금 흐름이 발생할 때까지 미국과 한국이 50대 50으로 수익을 분배하며, 원금 회수 뒤에는 미국이 전체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일본식 모델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를 전액 지분투자로 감당하기 어렵고, 원금 회수 전까지 배당·이자 등 보장 장치가 없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중국과 세계 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동맹국에까지 무리한 요구를 일삼고 있다. 관세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우리에겐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은행은 당초 합의안대로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될 경우에도 관세 부과 이전과 비교할 때 우리 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각각 0.45%포인트(p), 0.60%p나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등의 불이라도 쫓기듯 협상을 타결지어선 안된다. 미국의 일방적 요구와 압박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무작정 휘둘리기보다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 제시하려는 전략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대미 투자 시행 과정에서 조선을 포함한 우리 기업의 참여권을 구체적으로 반영할 필요도 있다. 미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선임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과 일본이 약속한 대미 투자 방식과 관련,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설명한 방식과 조금이라도 비슷하다면, 한·일이 합의를 수용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리석다”고 지적했다. 협상 과정이 지난하고 장기화하더라도 국익을 근본적으로 해치는 졸속 합의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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