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플 비, 어조사 재, 가을 추, 어조사 지, 행할(될) 위, 기운 기, 어조사 야. “가을의 기운은 참으로 슬프다”라는 뜻이다. 蕭瑟兮草木搖落易變衰(소슬혜초목요락이변쇠)로 이어진다. “슬퍼라 가을로 접어드니, 쓸쓸히 초목은 사라져가네”라는 뜻이다. 쓸쓸하고 막막한 가을 분위기를 이토록 선명하게 묘사한 구절이 있을까? 가을이면 으레 떠오르는 유명한 구절이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시인인 송옥(宋玉)의 ‘구변’(九辯)에 나오는 구절이다. 송옥은 중국 고대의 시인으로 유명한 ‘초사’(楚辭)를 남긴 굴원(屈原)의 제자다.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 따르면 송옥의 작품은 16편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14편이 전해지고 있다. 그중 ‘구변’만이 확실한 그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구변’은 “가을의 기운이 느껴지니 슬프도다”로 시작해 “고생을 참으며 지냈어도 이룬 것이 없어라”(蹇淹留而無成·건엄류이무성)로 끝난다.
고대 중국 남방 문학의 대표작인 ‘초사’는 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굴원이 참언(讒言)으로 쫓겨나게 된 심정을 슬퍼하며 지은 노래다.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詩經)에 황하 유역, 즉 중원 지방의 민요가 집대성돼 있다면 ‘초사’는 남쪽의 장강(長江), 즉 양쯔강 유역의 노래다. ‘이소’(離騷), ‘구가’(九歌), ‘천문’(天問), ‘구장’(九章), ‘원유’(遠遊), ‘복거’(卜居), ‘어부’(漁父) 등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어부’는 고기를 잡은 어부와 저자(굴원)와의 대화가 마지막 구절이다. 어부는 왜 홀로 맑아 세상에서 쫓겨났느냐고 물으면서 “창랑의 물이 맑으면(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 갓끈을 씻고(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 창랑의 물이 탁하거든(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 발을 씻으면 돼네(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라며 떠난다. 지금도 회자되는 명구(名句)다.
가을은 인생의 쓸쓸함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뒤돌아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좋은 시절, 잠시라도 유튜브를 끄고 책 속에 담긴 선인들의 지혜를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강현철 논설실장
실시간 주요뉴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