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투자펀드 놓고 해석 달라

통상협상 후속조치 논의 ‘빈손’

김용범 실장 “마스가 힘들듯”

구금사태로 외교정책 기류 변화

한미 관세협상의 후속 실무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국 이민당국의 단속으로 구금된 한국인 300여명을 귀국시킬 전세기의 현지 출발도 당초 예고했던 현지시간 10일보다 미뤄졌다.

한미 정상회담 때까지 좋았던 양국 간의 관계에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3500억달러(약 486조원) 대미 투자 펀드를 놓고 각자 유리하게 해석했던 양국이 마치 ‘동상이몽’에서 깨어난 듯 교착 상태에 빠졌고, 우리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따라갈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균열을 일으킨 것은 지난 7월 30일 관세협상 타결 당시 우리 정부가 제시한 3500억달러(약 486조원) 대미 투자 펀드의 조성과 집행 방식이었다. 이는 협상 타결 이후 한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향후 실무 협상의 ‘시한폭탄’이 될 것으로 예고된 사안이었다.

실제로 한미 통상협상 후속 조치를 논의하는 우리나라 실무 대표단은 미국 측과 별 다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9일(현지시간) 귀국길에 올랐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협상이) 교착상태”라고 인정했다.

김 실장은 지난 9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3500억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1년에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200억~300억달러를 넘기 어렵다”며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마스가(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도 시작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김 실장의 발언은 3500억달러의 펀드를 현금으로 조달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애초 우리 정부는 관세협상 타결 이후 줄곧 합의한 3500억달러의 대부분이 대출이나 보증이 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미국 정부 역시 해당 펀드의 90%를 자신들이 원하는 쪽에 쓰겠다는 뜻을 여러차례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정부는 추후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며 말을 아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한미 정상회담 당시 ‘한국과 무역 협상을 결론 내렸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 난 우리가 협상을 끝냈다고 생각한다”며 “그들(한국)은 몇가지 문제를 제기했지만 우리는 우리 입장을 고수했다(we stuck to our guns)”고 답했다.

미국 정부는 양보할 뜻이 애당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와는 달리 일본은 약속했던 5500억달러의 투자금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인 2029년 1월까지 모두 집행하는 데 합의했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최근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25%의 관세를 15%로 낮추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받아냈지만, 일본 내부에서도 지나치게 양보한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이를 고려한 듯 우리 정부는 일본과 같은 방식은 불가하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김 실장은 “일본은 기축통화국이고 외환 보유액도 우리나라의 3배”라며 “우리나라 국민이 (비슷한 조건) 그대로 사인해야 한다고 생각하겠나”라고 말했다.

한국 대표단이 양측의 쟁점이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귀국한 만큼 실무협의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런 와중에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명이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한미 간 균열이 점점 더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 5일 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동반 발전을 위한 우리 국민과 기업의 활동에 부당한 침해가 가해지는 일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최대한 자제하면서도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 의원들도 미국의 조치에 강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지난 8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6명이 ‘지나친 조치로 미국 정부에 실망했다’고 답했다.

김 실장도 “정부는 국민이 느낀 공분을 그대로 미국에 전달했다”며 “앞으로 더 많은 투자를 미국이 희망하는데, 이런 문제가 해결이 안 되면 투자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미국 이민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들의 석방이 갑작스레 지연되기까지 하면서 정부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조지아주에 구금된 우리 국민의 현지시간 10일 출발은 미국 측 사정으로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이번 구금 사태로 대미 출장을 모두 취소하는 등 사실상 현지 투자와 공장 증설 등을 거의 중단했다. 미국 정부는 뒤늦게 외국 기업 비자 문제 대응을 위한 관계부처 공동 대응에 들어가겠다고 진화에 들어갔으나, 귀국 일정이 예정보다 지연되면서 미국에 대한 국민여론은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박정일 기자 comja7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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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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