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둑이 무너져 봇물이 터지는 형국이다. IMF 경제위기 이후 그토록 지키고자 애썼던 재정 건전성 얘기다. 지난달 29일과 이달 3일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첫 예산안(2026년)과 ‘제 3차 장기 재정전망’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혈세를 펑펑 써대 나랏빚을 천문학적으로 늘리겠다는 ‘대한민국 파산선언문’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5년동안 국가채무를 409조원 늘린 문재인 정부는 저리 가라할 정도다.
이 대통령과 예산안 편성권을 가진 기획재정부의 구윤철 장관은 바닥인 경기를 살리려면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적자재정의 이유로 꼽는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을 뜯어보면 경기부양용 지출보다는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 예산들이 대거 곳곳에 숨어있다. 곁으로 경기 마중물이라고 하지만, 속은 선거용 예산인 셈이다.
새 정부 들어 유일하게 유임된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8일 “직장인 식비 지원 사업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직장인들에) 정부가 비빌 언덕이 돼주면 안 되나”라고 항변했지만, 세금으로 5만4000명에 달하는 직장인들의 점심값까지 보조해주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내년 예산안엔 1703억원을 들여 농어촌 주민 24만명에 월 15만원, 연간 18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만으로는 모자라 내년에만 142조원(본예산 기준)의 빚이 늘어난다. 이렇게 4년간 무려 487조원을 빚내 쓰겠다고 한다. 누가 이 빚을 갚을 것인가. 지금 자라나는 미래세대가 그 짐을 져야 한다. 정부의 적자재정 천명은 곧 미래세대를 약탈하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정부의 뻔뻔함은 문재인 정부 5년을 넘어선다. 기재부의 ‘제3차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49.1%인 국가채무 비율은 40년 후 150%대로 치솟는다. 문 정부 당시인 2020년에 발표된 전망에선 장기 채무비율이 80% 선에 그쳤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가채무가 GDP의 100%가 돼도 괜찮다고 우기지만 국제금융계에선 비(非)기축통화국의 경우 국가채무가 GDP의 60%를 넘어서면 위험 수위로 판단한다. 2010년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은 부실 재정으로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며 혹독한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리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은 그후 일제히 국가채무 비율을 낮췄다.
구윤철 장관이 이런 전망을 내놓은 것은 이재명 정부의 확정재정 철학에 맞춰 나랏빚을 무방비로 방치하겠다는 뜻과 다름없다. 과거 정통 경제관료들이 국가경제에 필요할 경우 최고 지도자에 충언했던 소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정부조직 개편으로 예산편성권이 기재부에서 국무총리 산하에 신설되는 기획예산처로 넘어간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실이 예산에 개입할 여지가 커진다. 대통령과 여당이 예산을 마음대로 써도 견제할 장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게다가 공공기관·지방정부·공기업 등이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차입할 때 정부가 상환을 보증한 국가보증채무와 공공기관 부채 등 ‘잠재 채무’도 오는 2029년 100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지금도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리는 정부는 그것도 모자라 한국은행으로부터 차입해 쓴다. 올들어 8월말까지 그 액수가 146조원이다. 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한 국채의 이자비용만 연간 30조원이 넘는다.
출산수당, 육아수당, 아동수당, 무상교육, 청년수당, 취업수당, 농어촌 기본수당, 기초생활급여, 실업수당, 기초연금에 민생쿠폰까지 정부가 무상으로 주는 돈이 차고 넘친다. 심지어 전북의 몇몇 지자체들은 농학농민수당까지 준다.
지출을 늘리려면 세수를 증가시켜야 한다. 세수엔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기업들이 돈을 벌어 세금을 내려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노란봉투법이니 개정상법이니 온통 반기업법뿐이다. 노동유연성 제고, 규제 완화 등 구조조정은 한마디 안하고 잠재성장률을 3%로 올린다고 한다. 무슨 ‘마법의 지팡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 9일(현지시간) 사임한다. 국가채무가 GDP 대비 113%까지 늘어나자 국방비를 제외한 모든 지출을 동결하고, 공휴일을 축소하는 등 긴축 예산안을 발표했는데 하원 투표에서 불신임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재정 악화를 걱정한다면 프랑스처럼 사임을 각오하고서라도 정부부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도에 넘치는 무차별 복지를 재설계하고, 선거를 겨냥한 선심성 정책을 거둬들여야 한다. 국민의 40%가 세금을 한푼도 안내는 기형적인 세수 구조도 뜯어고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정적자 규모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재정건전화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세대에 조금이라도 떳떳할 수 있다. 이미 ‘공짜’의 달콤함에 정치권과 국민이 물든 이상 법으로 규제하지 않으면 나라살림이 정상화되지 못한다. 달콤함의 결말은 ‘대한민국 파산’과 그에 따르는 ‘코리아 엑소더스’뿐이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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