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가스전, 해외투자에 성패

석유공사, 19일 입찰마감… 韓 에너지 주권 시험대

반세기 이어진 탐사 “심해시추, 특정정부 과제 아냐”

2002년 동해-1가스 생산시설 기공식 [석유공사 제공]
2002년 동해-1가스 생산시설 기공식 [석유공사 제공]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운명이 오는 19일 이후 향방이 갈린다. 정부가 대왕고래 내년도 예산을 ‘0원’으로 편성한 가운데, 한국석유공사가 해외투자 유치에 나서면서 성패가 입찰 결과에 달렸다.

동해가스전은 우리나라를 산유국 대열에 올린 상징적 현장이다. 1960년대 이후 외국 조광권자들이 잇따라 철수했지만, 정부와 업계의 노력 끝에 2004년부터 생산에 성공하며 국산 석유 개발 기술력을 입증했다.

순항할 것 같던 자원 개발은 좌초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직접 발표한 뒤 심해 자원 개발은 정치 공세의 도마 위에 올랐고, 1차 탐사 시추에서 ‘경제성 부족’ 판정까지 나오며 사업 동력은 크게 약화됐다.

전문가들은 자원개발은 특정 정부의 과제가 아니라 여러 정부에 걸쳐 이어온 장기 사업이라며, 정치 쟁점에 휘말리지 않고 심해 시추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정부지원 끊긴 대왕고래, 민간투자가 답

희망= 4일 업계 따르면 석유공사의 동해 해상광구 지분참여 입찰 공고가 오는 19일 마감된다. 당초 지난 3월 시작해 이달 초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마감 기한을 이달 19일로 연장했다. 이번 투자 유치 성패에 따라 동해 가스전 개발사업의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석유공사는 신중한 분위기다. 입찰을 앞두고 광구 상황이나 기술적 사항을 묻는 문의가 들어오고, 일부 업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 입찰 참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메이저 석유회사와의 탐사를 함께 하기 위해 19일 마감되는 입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은 탐사 시추 한 곳마다 1000억원 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정부 출자금과 석유공사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 왔다.

그러나 2020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석유공사는 정부 지원마저 끊기게 됐다. 올해 동해 시추 탐사 출자 예산이 전액 삭감된 데 이어 내년도 예산도 0원 배정받았다.

문신학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최근 예산안 브리핑에서 “신청 계획을 수립을 못한 것 때문에 예산에 반영 안 돼 있다”고 밝혔다. 사업 포기 여부에 대해서는 “에너지 파트에서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으며, 사업 진행 여부에 대해 말하기 이른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1993년 국내 대률붕 6-1광구 산출시험 [석유공사 제공]
1993년 국내 대률붕 6-1광구 산출시험 [석유공사 제공]

◇동해가스전, 반세기 탐사의 결실

우리나라 동해가스전 생산 역사는 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1960~1970년대 외국 조광권자들이 여러 차례 석유 탐사를 시도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1980년대 들어 국내가 처음으로 자주적 물리탐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동해가스전이 발견된 6-1광구가 출발점이 됐다. 6-1광구에서는 1983년부터 1991년까지 7공에서 평가 시추가 이뤄졌지만, 양호한 가스만 확인됐을 뿐 상업 생산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1992년부터 미탐사 지역 정밀 평가가 진행돼 5개의 가스 부존 유망 구조가 발견됐으나, 탐사 시추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1996년 석유공사는 자체 기술진으로 전담팀을 꾸려 물리탐사 자료를 재분석했고, 그 결과 동해에서 양질의 천연가스층을 찾아냈다. 1998년 6-1광구 중간에 있는 고래 V조 구조물에서 탐사 시추에 성공한 석유공사는, 이듬해까지 개발 타당성 조사와 세 차례의 평가 시추를 이어갔다. 2001년 6월 동해-1 가스전 개발은 본격화했다. 정부 허가를 거쳐 2004년 7월 마침내 생산을 시작했다. 이어 2005년 가스전 인근에서 추가 가스도 발견해, 이 자원은 2016년 7월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동해가스전의 총 회수액에서 투자비를 제외한 순회수액은 1조4000억원으로, 투자비 대비 213%에 달했다. 당시 동해가스전에서 확보한 천연가스는 4억1500만배럴로, 울산시가 2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또 초경질 원유 400만배럴을 생산해 국내에 공급했는데, 이는 자동차 55만대가 1년간 운행할 수 있는 분량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대왕고래는 어떨까. 정부는 지난해 12월 포항 앞바다 약 40㎞ 지점의 대왕고래 구조에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호’를 투입해 47일간 탐사 시추를 진행했다. 34억~140억배럴 매장 기대를 모았지만, 지난 2월 산업부가 발표한 1차 탐사 시추 결과는 ‘경제성 부족’이었다. 저류층과 덮개암, 셰일층은 확인됐으나 사업 추진 근거로 삼기엔 미흡했다. 앞서 지난해 6월 방한한 엑트지오는 동해 유전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20%로 내다봤다. 업계는 이 수치가 글로벌 석유·가스 개발의 평균치일 뿐, 석유 발견 확률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메이저 석유회사들은 한 곳에서 성과가 나면 주변 지역으로 탐사를 확대한다. 가이아나 유전이 대표적 사례다. 이곳은 세계적 석유기업 쉘이 수차례 탐사 끝에 철수했지만, 미국의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개발에 성공하며 글로벌 유전으로 자리 잡았다.

웨스트 카펠라 호가 시추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웨스트 카펠라 호가 시추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정치 아닌 정책… 심해시추는 장기 사업

전문가들은 해외에서도 심해 시추가 본격화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인 만큼, 우리나라 최초의 대왕고래 사업에 첫술에 배부르기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자원 개발 탐사는 특정 정부의 과제가 아니라 여러 정부에 걸쳐 이어온 장기 사업으로, 정치 쟁점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처럼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 공공 부문이 정부 재정을 투입해 탐사를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탐사 사업은 여러 정부를 거쳐 오랫동안 이어져 온 사업”이라며 “석유공사뿐 아니라 국내 민간 석유회사들도 수익성이 좋지 않아 해외처럼 자체 시추 여력이 없는 만큼, 공공 부문이 정부 재정을 투입해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막대한 석유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인도차이나반도를 중심으로 석유·가스 탐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일대의 유전을 확보했으며, 전쟁 이후에도 추가 탐사를 이어가며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있다.

웨스트 카펠라 호가 물자를 보충받고 있다. [석유공사 제공]
웨스트 카펠라 호가 물자를 보충받고 있다. [석유공사 제공]

◇ 동북아 에너지 가격 고려하면 개발 필요

정부의 소극적 대응은 ‘광개토 프로젝트’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2022년부터 진행된 이 사업을 매개로 동해 심해에서 7개의 유망 구조가 확인됐으며, 대왕고래도 그중 하나다. 광개토프로젝트는 국내 대륙붕 탐사 마스터플랜이다. 중국이 서해를 내해화하려는 움직임과 2028년 한일 공동개발구역(JDZ) 종료 뒤 일본의 독자 탐사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성격을 지닌다. 일각에선 대왕고래 결과에 따라 광개토 프로젝트가 자원 주권을 지키기 위한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오성익 국토교통부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사무국장의 저서 ‘처음 공부하는 석유·가스산업’에서 한국의 천연가스 개발은 동북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천연가스 가격 구조를 고려할 때 경제·안보적 이점이 크다고 설명한다.

액화천연가스(LNG)는 액화 과정에 막대한 에너지와 비용이 들지만, 국내 가스를 활용하면 탄소 배출을 기존 LNG 도입 대비 4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 최초의 LNG 도입국이었던 영국도 북해에서 천연가스를 발견한 뒤 LNG 수입을 줄이고 내수용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유 교수는 “대왕고래 여파로 전체 사업이 흔들릴 수 있고, 자칫 산유국의 꿈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일본도 우리와 비슷하게 불리한 여건이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오히려 일본을 뒤따라가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강승구 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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