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부동산유통부 유통팀장

한 여행객이 호텔에 예약금 10만원을 낸다. 호텔 주인은 이 돈으로 새로 산 침대의 외상 대금을 갚는다. 침대를 판 가구점 주인은 받은 10만원으로 치킨을 사 먹는다. 치킨집 주인은 그 돈으로 문구점에서 10만원어치 문구류를 산다. 호텔에서 돈 10만원을 빌렸던 이 문구점은 치킨집 주인이 낸 돈으로 호텔에 빚을 갚는다. 여행객이 예약을 취소하고, 호텔은 문구점에서 받은 10만원을 돌려준다.

대선 후보 시절, 지역유세 현장에서 이 대통령이 펼친 ‘호텔경제론’이다. 이 이야기 끝에 그는 “실제로 돈이 새로 생기진 않았지만 돈이 돌았다. 이것이 경제”라고 주장했다. 경제 상황이 나아지려면 돈이 돌게 해야 하고, 정부는 이를 실현할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경제엔 이 대통령의 이 같은 경제비전을 검증할 대국민적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바로 이달 2차 지급을 앞두고 있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이하 소비쿠폰)을 통해서다. 장기화하고 있는 경기침체와 고물가에 소비가 얼어붙어 돈이 돌지 않으니 소비쿠폰을 ‘마중물’로 부어 순환의 시작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행객의 호텔 예약금’ 10만원이 투입된 셈이다.

지난 7월 1차 소비쿠폰 지급으로 시작된 이 실험은 이제 중반에 와 있다. 실험 경과 보고서엔 뭐라 기록될 수 있을까. 소비부진의 늪을 조금은 빠져나왔다는 중간평가는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투입한 돈 대비 승수효과를 제대로 내고 있다고 기재될지는 의문이다.

호텔경제론의 핵심은 돈이 도는 것 자체가 아니라, 돈이 돌면서 내는 ‘재정 승수효과’에 있다. 재정을 운용하는 주체가 이 점을 놓치면, 소비쿠폰 정책에 대한 실험보고서는 ‘자화자찬’으로 도배될 뿐이다. 처음 투입한 돈이 돌고 돌아 4배의 효과가 나는 승수효과가 나려면, 바퀴(돈)가 크게 돌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오히려 바퀴가 점점 작아지는 모양새다. 이러다가 소멸되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다.

물론 소비쿠폰이 지급되면서 골목식당과 동네 마트, 전통시장의 소상공인들, 편의점들은 매출이 늘었다. 골목상권, 전통시장 상인들은 폭염·폭우로 소비자들이 백화점·대형마트로 더 몰리는 여름철을 소비쿠폰 덕에 버텼다고 말한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8월 5∼7일 전국상인연합회와 함께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소상공인 20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8%가 소비쿠폰 지급 이후 사업장에서 매출이 늘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가 2주간 신용·체크카드로 지급된 소비쿠폰의 사용처를 분석한 결과 대중음식점이 41.4%, 마트·식료품 15.4%, 편의점 9.7% 등으로 집계됐다. 지난 한 달간 소비쿠폰의 소상공인 대상 소비 진작 효과가 포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바퀴의 동력이 떨어져가고 있지는 않은가, 앞으로 몇바퀴나 돌 수 있겠는가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다. 현장에선 벌써부터 소비진작 효과의 한계가 감지된다. 소상공인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다시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서울 황학동 서울중앙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쓸 사람은 이미 다 써버려 이제 소비쿠폰 ‘약발’이 다 한 것 아닌가 싶다”면서 “매출이 잠깐 올랐다가 다시 줄고 있다”고 토로했다. 부쩍 한산해진 시장에서 그의 한 마디 말은 현 시점에서의 소비쿠폰 승수효과가 어떠한지를 가늠하게 해 주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소비쿠폰 효과가 한계에 다다르기 이전에, 바퀴가 미미하게 돌고 멈추기 전에, 정부가 경제 전반에 지속적으로 돈이 돌게 할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때다. 승수효과를 높이려면 쿠폰 지급-한시적 효과를 반복하기보다는 어디에 재정지출을 해야 효과가 크게 나타날지를 포인트부터 정확히 잡아야 할 것이다. 지급한 소비쿠폰과 자영업자 과잉·줄폐업 구조, 지속되는 고용 한파 등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정책과의 연결점도 찾아야 한다. 한마디로 정책을 좀 고도화하라는 얘기다.

단순히 쿠폰을 지급하는 것만으론 바퀴는 크게 구르지 않는다. ‘여행객의 호텔 예약금’ 10만원이 바퀴의 순환 고리에서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부터 냉정히 짚어보자.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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