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디지털콘텐츠국 국장
민주국가 대한민국에서 상상조차 못할 민망한 일이 벌어졌다. 외부 병원 진료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교정당국이 수갑과 전자발찌를 채운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단순한 보안조치라고 둘러대지만, 누가 봐도 도를 넘어선 것이다.
흉악한 성범죄자를 연상시키는 사법 도구를 채운 건 윤 전 대통령을 조롱하고, 인격적으로 매장하자는 집권 여당의 고약한 심보를 보여준다. “정치 보복은 없다”는 이재명 대통령과는 과연 무관한 일일까.
‘윤석열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법적으로 보면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게 맞다. 연쇄 살인자도 신상공개를 하려면 엄격한 절차를 지키는 등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인권을 따지는 요즘이다. 그런데도 윤 전 대통령엔 최소한의 전직 예우는커녕 기본적 인권마저 싸그리 무시한 꼴이다. 분을 못 참은 나경원 의원이 “내란몰이가 지나치다. 정치보복의 끝판”이라고 했다.
보수와 진보 인사 간에 다르게 적용되는 법의 ‘이중 잣대’도 문제다. 보수 진영 인사가 영장 심사를 나갈 때면 수갑을 채워 포토라인에 세운 뒤, 생중계하는 장면이 연출된다. 반면 ‘입시 비리’ 등을 비롯해 사법 재판을 받는 진보 진영 인사들의 경우 지지자들의 호위 속에 ‘정치의 희생양’인 양 발언하고, 인권을 이유로 비공개 출석을 요구해 관철받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윤석열의 정치·사법적 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를 소환한다. 양자 간에는 하등 달라진 게 없다. 처절한 반성과 성찰도 안 보인다. 제왕적 절대 권력을 휘두른 견제받지 않는 대통령, 그 뒤에 숨은 비선 실세, 국민과의 소통 대신 ‘패거리 싸움’에 목숨 거는 집권 여당. 그 모든 게 국민 눈에는 ‘찌든 보수’였을 뿐이다.
국민의 평가는 언제나 상대적이다. 거대 국회권력을 이용해 대통령을 강제로 끌어내린 민주당의 고약한 행태를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국민은 그런 민주당에 탄핵의 빌미를 주고,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국민의힘에 더 매서운 채찍을 들었다. 집권여당의 잘못이 더 막중하다고 본 것이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역겨운 모습을 한 번이라도 돌아봤을까.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보수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가난과 전쟁의 역경을 딛고 이뤄낸 경제성장, 6·25를 통해 견고하게 다져진 안보의식, 선진국 진입을 가능하게 해준 교육의 힘, 이 3가지 가치는 보수 세력을 지켜준 든든한 지지 기반이었다.
시대가 달라졌다. 만성적 저성장 기조 속에 경제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고, 교육의 목표와 지향점도 변해간다. 보수층에서도 ‘자유’ 만큼이나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 모든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가면 여지없이 ‘꼴통’, ‘꼰대’란 소리를 들을 판이다.
보수의 위기이자 보수 정치가 궤멸하기 직전이다. ‘콘크리트’ 보수 지지층 가운데 이런 상황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그럼에도 보수 정치권에선 이런 위기감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 기존 계파 중심의 패권 정치에 찌들어 국민과의 소통에 눈과 귀를 닫은 소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의 제물로 전락한 건 ‘박근혜 친위대’를 자처한 친박(친 박근혜) 세력이 한몫 했다. 윤 전 대통령의 추락도 결국 친윤(친 윤석열)과 반윤(반 윤석열)의 역겨운 반목이 키웠다. 하지만 ‘썩은 보수’는 한 손에 기득권을 움켜쥔 채, 여전히 계파 싸움질이다.
한국 정치가 위태롭다. 보수와 진보 모두 원리주의자가 득세해 서로를 완전히 부정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서다. 양측 모두 집단과 조직에 대한 충성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고, 다른 진영의 인사를 ‘적’으로 여긴다. 인간이 아니라서 악수는 물론 말도 섞지 않겠다고 한다. 집권여당 대표란 자가 공공연하게 ‘야당 궤멸’을 입에 올린다.
민주주의는 좌우 양쪽의 날개로 날 수 있다고 한다. 한쪽 날개를 잘라버린 새에겐 추락할 일만 남았다. ‘수갑·전자발찌 채워진 윤석열’은 단순 해프닝이 아닌,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는 없다는 포기 선언이다. 그보다 더한 인격 파괴, 법치 살인도 가능하다는 대(對)국민 엄포다.
디지털콘텐츠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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