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진짜 직업
나심 엘 카블리 지음 / 현암사 펴냄
흔히 ‘철학자’라고 하면,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치 골똘히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철학이 밥 먹어 주냐”라는 말이 있었다. 책은 스피노자에서 한나 아렌트까지 철학자들의 먹고사는 이야기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화려한 업적 뒤에 숨겨진 직업인으로서 면모를 탐구한다. 고대 로마 시대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였던 세네카에서 현대의 시몬 베유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사상, 학파 등을 넘나들며 다양한 철학자 40명이 가졌던 ‘진짜 직업’을 다룬다.
철학자는 직관적으로 미덕을 좇고, 미덕에 부합하는 그야말로 ‘이성’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가령 속세를 지양하고, 지적이고 정적인 활동만을 하며, 명예로울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실제 생업은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사회계약론’과 ‘에밀’로 유명한 프랑스의 철학자 장자크 루소는 악보 필사가 생계 수단이었다. 저자는 이들의 직업을 크게 철학자의 속성과 연결되는 일, 무관해 보이는 일, 그리고 이것까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는 일 등 세 가지로 분류한다. 섬세함과 논리력을 요하는 해부학자나 수학자, 변호사 같은 직업에서 신체의 훈련을 통해 정신력을 높이는 프로 사이클 선수, 오토바이 정비사, 렌즈 그라인더, 그리고 위조화폐 제작자, 은행 강도, 노예 같은 직업까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철학자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균열을 내고,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진다. 책은 이처럼 다양했던 직업들이 어떤 방식으로 철학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철학자들의 진짜 직업’은 우리가 ‘철학자는 이럴 것이다’라고 만들어놓은 통념과 직관에 반하는 이야기를 펼친다. 철학자로서 그들의 사상과 정체성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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