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진 산업부 재계팀장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두달여가 지난 현재, 기업들의 간곡한 호소는 또 다시 허공의 메아리에 그치고 있다.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노동조합·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세제개편안 등에서 기업 성장과 미래는 주주와 노조의 입김에 밀려 후순위로 밀려났다. 기업 지원보다는 정치적 계산이 우선시되는 모습이다.
새 정부는 출범 당시 성장 중심 경제정책 의지를 내비쳤지만 최근 세제개편안을 통해 법인세율을 높였다. 세법 개정안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은 24%에서 25%로 높아졌다. 노무현 정권 25%, 이명박·박근혜 정권 각 22%, 문재인 정권 25%, 윤석열 정권 24%에서 이번에 다시 25%로 오르게 돼 기업 경영 논리보다 정치 논리가 앞섰다는 게 또 다시 방증된 셈이다.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도 재계에서는 강력한 요청이 있었지만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는 아예 빠졌다.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두 번째로 높고,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최대주주 할증평가가 적용돼 60%에 달하는 실질 상속세율을 내야 한다.
법인세 인상과 멈춰 있는 상속세율은 모두 ‘부자감세’라는 타이틀이 연관돼 있다. 하지만 상속세율의 경우 지난 25년여간 동일한 만큼 이 기간 불어난 소득을 감안하면 기업뿐 아니라 국민들의 세 부담만 야기시키는 게 현실이다. 이제는 부자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할지, ‘부자’라는 이유로 기업들이 세금을 더 부담하는 게 적절한 지부터 되묻게 된다.
‘더 세진’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도 마찬가지다. 상법의 경우 기업 경영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외국 자본의 경영권 공격을 부추길 수 있다는 재계의 간곡한 호소로 지난 정권에선 무산됐지만, 새 정권 들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담은 1차 개정안이 통과된 데 이어 이번에는 자산 규모 2조원 이상 기업에 대한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등의 내용이 추가됐다. 이에 재계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노란봉투법도 비슷하다. 국내 재계는 물론 외투기업들도 ‘한국 이탈’, ‘투자 위축’을 넘어 ‘2025 APEC 정상회의 부정적 영향’ 등을 거론하며 강력한 반대의 의사를 표명해 왔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재계는 상법·노조법 모두 기업들의 목소리 대신 주주나 근로자의 목소리에 더 힘이 실린 배경으로 ‘표심’을 꼽고 있다. 법인세율 인상의 경우 주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데다 여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재계 입장에서 ‘작은 희망’인 동시에, 이 역시 기업의 경영 논리보다 주주들의 목소리에 기대야 하는 현실이다. 주객(主客)이 전도(顚倒) 된 것이나 다름없다.
예전의 원전 사업이 떠오른다. 문재인 정권 당시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산업은 밑바닥까지 추락했었지만 지난 정권에서 다시 수출 핵심 산업으로 부상했다. 이번 한미 관세 협상에서도 원전은 조선업 전용 펀드(1500억달러) 외의 2000억달러에 포함되며 협상 타결에 힘을 실어 주었다. 만약 원전이 계속 한국에서 사양 산업 취급을 받았더라면 관세 협상 대상에 포함될 수 있었을까.
이번 한미 협상에서 기업 총수들은 직접 발로 뛰는 ‘민관 협력’에 나서며 협상 타결을 이끌어 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최근 한 공중파 채널에 나와 조선업의 역할과 함께 재계 총수 등 민간의 노력이 협상 타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기업의 미래가 국가 경제의 바로미터이고, 일자리 창출과 직결된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일시적인 표심을 위해 기업을 옭아매는 ‘정치 논리’는 미래로 나아갈 경쟁력을 스스로 옭아매는 것과 다름없다.
장우진 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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