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와의 전쟁’ 생중계 선포
“중대재해처벌법 실효성 의문”
총수겨냥 징벌적 손해배상 검토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 재해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 대통령은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 33회 국무회의에서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불이익을 받게 하는 것이 산업 재해 예방에 도움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그동안 산재 발생 시 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 등 형사처벌 위주로 제재를 받았지만 이제는 시장경제 원리로 불이익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 총수도 정조준했다.
역대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생중계로 국무회의가 진행된 가운데 이 대통령은 “형사처벌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며 “사고가 실제로 나지 않은 상태에서 징역을 살릴 수도 없지 않나. (사업주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똑같은 사망사고가 상습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검토해봐도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중대한 사고가 나면 ESG(환경·사회·투명 경영)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고하자 “아주 재미있는 것 같다. 산재 사망사고가 상습적으로 발생하면 여러 차례 공시해서 주가가 폭락하게 (만들 수도 있다)”라고 언급해 중처법과는 또다른 방식의 불이익 수단을 제시했다. 주무부처 장관인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망사고 발생 시 형사처벌, 징벌적 손해배상과 함께 공공 입찰에 참여를 제한하거나 영업정지 조치를 하는 방식을 병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대통령은 “재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에 자꾸 문제를 제기하는데, 저 역시 이 법이 그렇게 실효적인가 하는 의문이 있긴 하다”며 “대부분 집유 정도로 끝나는 데다가, 실제 이익은 회장이 보는데 책임은 사장이 지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최근 자신의 지시를 받고 산재 예방을 위해 300명의 근로감독관 구성을 완료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해서는 “(단속을) 매일 나가야지, 왜 매주 나가시나”라며 “상당 기간이 지나도 산재가 안 줄면 직을 걸라”고 긴장감을 부여했다.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 산재 사망사고를 언급하며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고도 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날 국무회의가 1시간 30여분의 생방송 토론과 비공개 회의를 합쳐 3시간가량 진행됐다고 전했다. 회의에는 이재명 정부 들어 임명된 장관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하며 토론을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마무리발언에서 “산업재해가 거듭 발생한 기업은 회생이 어려울 만큼의 엄벌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살자고, 돈 벌자고 간 직장이 전쟁터가 된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용노동부는 사람 목숨을 지키는 특공대라는 생각으로 임할 것을 요청드렸고, 고용부장관께서 산재를 줄이는 데 직을 걸겠다고 답했다”고 재차 산재 예방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이처럼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한 배경에는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소년공 시절 부상을 입어 장애 판정을 받은 바 있다. 2021년에는 “나이가 들어도 살만해져도 장애의 서러움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렵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17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내 노동자 사망사건에 대해 “전 세계에서, 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율 또는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고 하는 이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는 반드시 끊어낼 것”이라고 다짐한 바 있다.
지난 25일에는 여러 차례 산재사고가 발생한 SPC 시흥공장을 직접 방문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SPC는 이 대통령의 방문 이틀 만인 27일에 “8시간 초과 야근 폐지 위해 인력 확충 및 생산품목과 생산량 조정, 라인 재편 등으로 생산 구조를 완전히 바꿀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는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현장 추락사고, 4월에는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현장 붕괴사고와 대구 주상복합 신축현장 추락사고도 발생하는 등 올해 들어 4차례 중대재해 사고가 일어나 4명이 사망했다.
비상장사인 포스코이앤씨의 모기업인 POSCO홀딩스 주가는 이날 이 대통령의 질타 소식에 전날 대비 2.32% 급락했다. 정희민 포스크이앤씨 대표이사는 긴급 사과문을 발표하고 “안전 확인시까지 모든 현장 작업 무기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안소현 기자 ashrigh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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