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목 절반, 거래량 100건 이하
‘고위험’ 인식·낮은 인지도 탓
“ETF와 차별화된 전략 필요”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이 200조원을 넘어서며 가파르게 성장하는 사이, 상장지수증권(ETN) 시장은 갈수록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거래량이 100건도 되지 않는 종목이 절반에 달하고, 신상품도 외면받으며 ETN 시장은 ETF에 밀려 정체의 늪에 빠졌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기준 ETF 상품은 총 1002개로 시가총액 222조원을 돌파했다. 반면 ETN 종목은 390개에 그쳤으며 지표가치 총액은 16조원대에 머물렀다.
ETN은 증권사가 발행하는 파생결합증권이며 지표가치는 투자자가 만기까지 ETN을 보유할 시 증권사로부터 상환 받는 금액으로 ETF 순자산가치(NAV)와 같은 개념이다.
ETF 시장이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ETN 시장은 정체돼 있다. 작년 초 대비 ETF의 시가총액은 121조원에서 82% 급격하게 늘어났으나, ETN은 23% 성장에 그쳤다. 이 마저도 4월 말 16조원을 돌파한 뒤 현재까지 제자리 걸음 수준이다.
ETN 시장에 활기가 사라지면서 활발하게 거래되는 종목도 소수에 불과하다. 전일 기준 거래량이 가장 많은 종목은 삼성증권의 ‘삼성 인버스 2X WTI원유 선물 ETN’로 하루 동안 1294건의 거래가 발생했다. 이 외에 거래량이 100건이 넘는 종목은 8개에 불과하며 이날 100건 미만으로 거래가 발생한 상품은 총 162개로 전체 상장 종목 390개 중 절반에 해당했다.
시장이 투자자의 관심에서 벗어나자 신상품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키움증권의 ‘리츠부동산인프라 ETN’의 지난 5월 9일 증시 상장 이후 영업일마다 1건의 거래만 발생하고 있으며 거래가 크게 늘어도 11건을 넘기지 못했다. NH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N2 레버리지 국채30년’을 시장에 선보였는데, 대부분 거래량 0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밸류업 프로그램 시행 이후 밸류업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상품이 동시에 출격했지만, 이 마저도 ETF에 완전히 밀려버렸다.
삼성증권은 국내 증권사 중 유일하게 코리아 밸류업 TR 지수를 기초지수로 하는 ‘삼성 코리아 밸류업 TR ETN’을 상장했으나, 올해 들어 거래대금이 1억원을 넘긴 날이 2영업일 뿐이며 연초엔 거래대금 0원, 최근엔 3만8000원에서 74만원을 오가는 등 불균형한 흐름을 보였다.
ETN 시장은 출범 초기 빠르게 성장했으나, 2019년부터 정체기가 시작, 2020년엔 ‘마이너스 유가’로 원유 ETN 손실 우려가 고조되며 ‘고위험 투자’라는 인식이 생겼다. 이후 증권사들은 금, 은, 구리 등으로 원자재 자산을 다원화하며 시장규모를 키우고, ETF와는 차별성이 드러나는 상품을 선보이려 노력하고 있지만, 좀처럼 투자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모양새다.
인지도 측면에 ETF에 밀리는 것은 물론, 자산운용사들은 공모펀드보다 ETF의 성장세에 주목하며 신상품 출시에 주력하고 있는 반면, 증권사의 입장에선 ETN 외에도 수익 창출원이 많아 ETN에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들의 ETF 점유율 경쟁으로 운용 보수를 최저 수준으로 낮추면서 박리다매 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며 “증권사 입장에선 이 경쟁에 ETN을 끼워넣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나 ETF는 퇴직연금에 활용될 수 있어 장기 투자 수요가 있지만, ETN은 상대적으로 위험이 크고 대부분이 퇴직연금 계좌에서 거래가 불가능하다. 현행 퇴직연금감독규정에 따르면 ETN은 원금 손실률이 40%를 초과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퇴직연금 투자 대상에서 제외된다.
단, 만기에 받게 될 최소 상환금액을 사전에 발행가의 70% 이상으로 약정한 ‘손실제한 ETN’은 퇴직연금 계좌에서 거래 가능하나, 해당 상품은 ‘미래에셋 KRX금현물’ 뿐이다.
전문가들은 ETN 시장이 살아나기 위해선 ETF와 차별성을 띄는 상품이 출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ETF를 뛰어넘는 차별화된 상품이 투자자의 이목을 끌 수 있고, 수요가 채워지면 다양한 상품들이 라인업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ETF는 하지 못하는, ETN만이 할 수 있는 상품이 필요하다고 짚는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새로운 전략을 기반으로 한 상품을 출시하면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ETF에선 출시하지 못하는 상품들이 ETN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jy1008@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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