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개헌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의 하나는 ‘개헌은 블랙홀이다’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이다. 그로 인해 개헌에 소극적인 정치권 인사들이 이 말에 기대어 개헌을 반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은 개헌 논의가 많은 정치적 논란을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지만, 세 가지 점에서 정확하지 않으며, 오히려 개헌에 대한 오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첫째, 개헌은 빨아들이기만 할 뿐인 블랙홀과 달리 많은 논의를 끌어들여서 새로운 국가 질서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재생산의 과정’이다. 즉,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여 소멸시키는 것이지만, 개헌은 빨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빨아들인 것을 다시 정리해서 새로운 것으로 만드는 ‘화이트 홀’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개헌은 이유 없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춰 헌법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홀이 재앙을 상징하는 것과는 달리 개헌은 국민을 위한 국가작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국가경쟁력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미래를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셋째, 정치권에서 ‘개헌 블랙홀’보다 ‘대선 블랙홀’이 더 강력하다는 점은 2017년 국회 개헌특위와 19대 대선이 동시에 진행되었던 당시에 확인된 바 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대선에 관심이 쏠리면서 개헌에 소홀한 바 있었고, 그 결과 국회 개헌특위는 1년의 활동 후에 보고서 하나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의 보고서가 당시의 논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개헌을 정치적 불안의 요소 내지 계기로만 보는 것도, 이를 이유로 반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물론 개헌이 유신헌법 등의 경우처럼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서 영원히 개헌을 안 한다고 할 것인가?

개헌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재앙이 될 것을 두려워해서 개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국가 사스템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을 방치하는 것이며, 그 자체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각한 재앙이 된다.

개헌은 정치권을 뒤흔드는 태풍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태풍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지구에 태풍이 없으면, 더운 지역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더위를, 추운 지역은 반대로 더욱 극심한 추위를 겪게 된다. 태풍이 이를 적절하게 섞어줌으로써 지구 곳곳에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개헌은 홍수가 될 수 있다. 개헌 논의 과정에서 과도한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고,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개헌 논의 과정을 잘 조절한다면 개헌은 홍수가 아닌 ‘가뭄 속의 단비’가 될 수 있다. 결국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어떤 방식, 어떤 내용으로든 무조건 개헌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공정한 방식, 합리적인 내용으로 개헌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점에 유념해야 한다.

우선 1987년 제9차 개헌 이후 38년 동안 화석화되어 버린 헌법의 일부 시대착오적 내용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개발독재의 유산인 제왕적 대통령을 유지하는 것도 그렇고, 제3공화국 말기에 대법원의 위헌판결을 받았던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를 유신헌법에 명시한 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현행헌법 제29조 제1항도 그렇다.

또한, 보수와 진보의 진영에 따른 입장의 차이보다는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공통분모를 확인해야 하며, 이를 위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거국적 노력과 합의가 필요하다. 그 바탕에는 당연히 국민적 공감이 확실하게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개헌의 성공을 위해 지난 38년 동안 축적된 모든 개헌 사항들을 일거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당면 과제와 관련하여 긴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부분을 중심으로 하되, 그중에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뚜렷한 부분, 여야 합의가 가능한 부분을 일부라도 먼저 개헌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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