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백가지 음식의 진수성찬 중국 황제의 식사 ‘어선’(御膳)
- 한대 황제, 밀가루에 참깨 넣어 부친 호병(胡餠) 즐겨
- 당대엔 새끼 거위 뱃속에 돼지고기와 참쌀밥 넣어 구운 ‘혼양몰홀’ 유명
- 주원장 등 명대 황제는 전어로 불리는 준치 좋아해
- 한 끼에 백성 5000명 먹을 비용… 천하진미는 백성의 땀과 고름
중국 역대 황제들의 식사는 어땠을까? 황제가 먹는 밥은 ‘어선’(御膳)이라고 했으며, 어선을 준비하는 부엌이 ‘어선방’(御膳房)이었다. 황제는 먹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또 얼마든 먹을 수 있었다. 천하의 산해진미(山海珍味)를 혼자서 먹기도 했다. 어선에 대한 역사 기록은 송 이후가 많다. 특히 청의 기록은 자료가 많을뿐 더러 아주 상세하다.
고대 한(漢) 나라때 평민은 하루 두 끼, 귀족과 종실은 세 끼를 먹었으며, 황제는 네 끼를 먹었다. 후한 장제때 편찬한 일종의 회의록인 ‘백호통’(白虎通)에는 황제는 아침에는 ‘평단’(平旦), 점심은 ‘주’(晝), 이른 저녁은 ‘포’(晡), 야식은 ‘모’(暮)를 먹었다고 한다.
한(漢)대의 황제들은 탕류와 쇠고기, 양고기,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었다. 밀가루 음식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호병’(胡餠)으로, 밀가루에 참깨를 넣어 부친 전병이다. 한의 영제가 특히 호병을 즐겼다.
당(唐)대에는 음식 가짓수가 늘어나고 고급 음식이 많아졌다. 갖가지 양념을 한 돼지고기와 찹쌀밥을 섞어 털과 내장을 제거한 새끼 거위의 뱃속에 집어넣고, 그 거위를 다시 껍질과 내장을 없앤 양의 뱃속에 넣어 꿰맨 후 불에 구은 ‘혼양몰홀’(渾羊殁忽)이라는 음식이 특히 유명했다. 황제는 이가운데 거위고기만을 먹었다.
송(宋)대에는 황제의 식사가 더 진귀해졌다. 변량(지금의 항주)에 수도를 둔 남송 황제들의 어선은 무려 백가지가 넘었다. 예술의 후원자이자 화가· 서예가로 유명했지만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던 휘종은 매일 백 가지가 넘는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남송 고종은 연회때 과일 가짓수가 배, 석류, 여지, 야자 등 130여종, 술은 20가지, 술 안주는 30가지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1368년 주원장이 건국한 한족 최후의 통일 왕조인 명(明)대엔 황제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전어로 불리는 준치였다. 양자강 중하류에서 잡히는 귀한 물고기로, 명 태조 홍무제(주원장)도 준치를 매우 좋아해 조공으로 바치게 했다. 죽은 뒤 영정 앞에도 준치가 제물로 올려졌다. 주원장은 버섯도 즐겼는데, 남방에서 온 버섯의 맛을 본 후 신선의 음식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청(淸)대의 황제들도 버섯을 특히 좋아했다. 건륭제는 버섯부용탕을 평생 동안 즐겼다. 건륭제가 장수한 것은 버섯 덕분이라는 소리도 있다. 청대 황제들은 매일 아침과 점심 두끼의 정찬과 저녁 6시쯤 간식을 먹었다.
쟝위싱(蔣玉幸)이 지은 ‘중국 황제 어떻게 살았나’에 따르면 황제가 먹고 마시는 데 쓴 돈은 실로 엄청났다. 청대 내무부의 기록에 따르면 궁중 어선방에서 매년 은 3, 4만냥을 썼다고 한다. 황제와 황후 어선에 들어가는 재료는 매일 고기 27근, 돼지기름 1근, 양 반 마리, 닭 5마리, 오리 3마리, 배추 시금치 미나리 총 19근 등이었다고 한다. 비용으로 따지면 5000명의 백성이 하루에 먹는 것을 황제는 혼자 먹어치웠다.
황제의 식사가 진수성찬일수록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기름지고 천하진미의 음식은 백성들의 피와 고름이었던 것이다.
강현철 논설실장(hckang@dt.co.kr)실시간 주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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