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 산, 거듭할 중, 물 수, 겹칠 복, 의심할 의, 없을 무, 길 로. 산과 물이 계속 이어져 길이 없다는 뜻이다. 산길도 물길도 모두 막혔다. 나아갈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막막한 형국이다. 길이란 본디 걸어갈 수 있어야 길이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길이 단절된 듯 하다.
중국 남송(南宋)의 시인 육유(陸游)의 ‘유산서촌’(遊山西村; 산서촌에서 놀다)의 시구다. 사방은 온통 첩첩산중(疊疊山中)인데 어느덧 해는 서산으로 기운다. 발길이 막힌 시인의 눈 앞에, 마치 운명이 손을 내미는 듯, 한 장면이 문득 펼쳐졌다. 그는 이렇게 썼다. ‘山重水複疑無路, 柳暗花明又一村’(산중수복의무로, 류암화명우일촌; 산 넘어 산, 물 건너 물, 이젠 길도 없지 싶더니만, 버들 늘어지고 꽃 화사한 또 한 마을이 나타나네).
시인은 말한다. 앞길이 꽉 막혀 막막해 보여도,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버들과 꽃들이 활짝 핀 마을이 나타날 것이라고. 시인은 아무리 비바람 거센 세상이라 해도 흔들림 없이 꿈을 위해 매진한다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속삭인다. 세상은 견디고 나아가는 자에게 길을 열어준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단박에 풀릴 수 없는 숙제들이 산적하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것이 여간 만만치 않다. 국회는 여전히 대립 중이다. 외교는 더욱 복잡해졌다. 트럼프의 관세 압박은 심해지고, 미중 패권 경쟁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요구받고 있다. 지금은 길이 없는 듯해도, 포기하지 않고 걷는 자에게 길은 열린다. 화사한 마을은 꾸준히 걷는 자의 눈앞에 나타나는 법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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