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기생과 회사원의 피지 못한 사랑

한 맺혀 한강(恨江), 청춘 비애

강(江)! 세상에 사연 하나 품지 않고 흐르는 강이 어디 있으랴. 수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이 읊은 시심(詩心)에서부터, 애절한 청춘 남녀의 사랑, 세상사에 지쳐 강물에 몸을 맡긴 이들의 절망까지, 강은 말없이 그 모든 이야기를 안고 흐른다. 오늘도 그렇게 흐르는 한강, 100년 전 이 강물에도 사연은 가득했다. 기생과 회사원의 슬픈 정사(情死) 사건을 찾아 물길을 거슬러 올라 가본다.

“경성 수은동 105번지 기생 황국화(黃菊花·17)는 시내 창신동 449번지 이명호(李明鎬·22)와 같이 그제 오전 8시경에 한강 봉환(鳳煥) 뽀-트 구락부에서 뽀-트 한 채를 빌어 타고 사공 이흥윤(李興允·19)을 데리고 한강 상류 한강 신사(神社) 앞까지 가서 배에 내리고 사공은 돌아왔던바, 그 후 두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자취가 없어지고 다만 언덕에는 남자의 구두 한 켤레와 기생의 신발 한 켤레와 맥고 모자 한 개와 도장과 넥타이만 남아 있는 것을 그 부근으로 지나던 자갈 실은 뱃사공이 발견하고, 위 사공 이흥윤에게 알려 일대 소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들은 과연 정사(情死)를 한 것인지 또는 도망을 한 것인지 정사한 듯한 모양을 꾸며 놓고 어느 곳에 숨어 있는지 도무지 소식이 없으므로, 이 소식을 들은 그들의 친척들은 한강 언덕에 모여 울며불며 시체를 찾느라고 야단 중이라더라. 의문의 두 남녀! 죽었는지 살았는지? 이 두 남녀의 관계는 어떠하였든 황국화는 지금으로부터 여섯 해 전에 기생 학교에 들어 가무(歌舞)를 배우며 이전에 대동권번(大同券番)에 다니다가 집안 사정으로 일시는 시내 어떤 사람에게 살림을 들어가 한참 동안은 귀부인 생활을 하였으나 꽃피는 아침과 달 밝은 저녁이 되면 화류장의 꿈같은 생활이 그립던지, 작년 9월 16일에 시내 태평통 한성권번(漢城券番)에 들어가 다시금 녹의홍상(綠衣紅裳)에 기생 생활을 하게 되었다. 기생 살림이라 이 손님 저 손님이 드나들던 중 10여 일 전부터는 시내 경성제염회사 이명호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젊은 남자의 충동인지 어린 여자의 호기심이든지 이명호와 같이 상종을 하게 된 황국화는 수일 전부터 일본 동경으로 가겠다고 간간이 집안사람에게 말한 일이 있었으나, 온 목숨을 황국화에게 매인 집안 사람은 도무지 들어 주지를 아니 하였다. 60살이 넘은 황국화의 할머니와 친어머니 김씨는 흐르는 눈물을 못내 씻으며 ‘이명호가 내 집에 드나들기는 10여 일 전입니다. 보통 달은 손님과 같이 알았지 그 애와 무슨 친밀한 관계가 있는 줄이야 알았습니까. 지난 22일 저녁에 그 애가 그 사람과 같이 영도사로 나갔다 오더니 동경에 가서 공부라도 하고 싶다고 말을 합디다. 그리고 그제 저녁에 제일루(第一樓) 놀음에 갔다 오더니 어제 아침밥을 먹고는 지난 밤에 요릿집에 두고 온 영업장을 찾아오겠다 하고 집을 나가더니, 저녁 때가 되어도 아니 오고 자정이 지나도록 아니 오기에 그때까지 어느 손님에게 붙잡혀 어느 요릿집에서 노는 줄 알았더니 뜻밖에 오늘 새벽 2시쯤 되어 한강에서 빠져 죽었다고 이명호 집에서 통지가 왔습디다. 이 소리를 듣고 집안을 뒤져 보니 동경에 간다는 유서까지 써 두었어요. 꽃으로 이르면 봉오리인데 저 몹쓸 년이 무엇이 부족하여 저 짓을 하였겠습니까.’ 말끝을 맺자마자 분홍빛 당운 혀를 붙잡고 목을 놓아 울더라. 그 배를 부리던 사공 이흥윤은 배를 저어 한강 신사 앞에까지 갔더니 그 청년과 기생이 강 언덕에 내리면서 날 더러 ‘자기네는 거리서 좀 놀 터이니 2시간 뒤에 배를 가지고 다시 오라’기에 뽀-트 구락부에 와 있었더니, 한강 위에서 자갈을 싣고 다니는 뱃사람이 전후 광경을 말하여 급히 가 보니 사람은 간 곳 없고 신발 뿐입디다. 지금도 의심스러운 것은 그 청년이 배에서 내려 강 언덕을 가르치며 그리로 가는 길이 있느냐 합디다. ‘아마 둘이 어디로 달아났는가 봐요’하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1925년 7월 1일자 동아일보)

과연 이들 청춘 남녀는 어디로 간 것인가? 다음날인 7월 2일 동아일보를 통해 이들에 대한 소식이 전해진다. “어제 1일 오전 9시경에 한강 언덕 이촌동 303번지 김성여(金聖汝·34)가 마침 한강 신사(神社) 앞 물 위에 어떠한 시체 하나를 발견하고 즉시 건진 바, 나이 약 17~18세 된 미인의 시체로 입은 의복과 체격을 보아 곧 위의 황국화의 시체로 판명되고 뒤를 이어 오전 11시 15분경에 또한 같은 물속에서 22~23세 된 청년의 시체 하나를 건져 이명호의 시체로 판명되었더라. 이에 대하여 이명호의 친형 이재호는 눈물을 머금고 ‘친형제 간이다 마는 본래부터 허랑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애가 이전 이왕직(李王職) 미술 공장 자개 직공으로 있다가 조선 미술제작소로 변하자 즉시 나와서 벌써 3~4년 동안을 집에서 경영하다시피 하는 경성제염소(臍炎所) 집금원(集金員)으로 근실(勤實)하게 일을 잘 보았습니다. 10여 일 전부터 경성 수은동 황국화와 가까이 논다는 소문을 듣고는 때때로 불러 타일렀습니다. 그러다가 한 일주일 전에 그 애가 동경에 있는 어느 친구에게서 오라는 전보를 받고는 동경으로 가겠다고 조르기에 우리 생각에 그런 데라도 보내서 그 기생과 관계를 끊도록 하려고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죽던 전날은 동경 갈 여비로 돈을 달라 하기로 마침 그 애가 거둔 돈 120원을 가진 것을 알고 끝끝내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하였더니 그 길로 수은동 그 애의 처가에 가서 돈 20원을 청하였으나 마침내 얻지 못하고 그 이튿날 아침에 그 애 수중에 있는 돈 4원을 가지고 황국화와 같이 한강에서 배를 타고 놀다가 어디로 갔다 하기에 어제도 종일 한강에서 시체를 찾다가 못 찾고 행여나 동경으로 나갔으려니 짐작하였지요. 더욱이 황국화가 써 둔 동경간다는 유서까지 어제 저녁에 보고는 아주 마음을 놓았더니 오늘 아침에야 시체가 떴답니다. 누가 그 기생과 같이 정사(情死)를 할 줄이야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라고 하더라.”

이 사건에 대하여 7월 4일자 매일신보에는 ‘한강(漢江)이 아니라 한강(恨江)인 것 같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하나 실린다. 한강은 지리적 명칭으로서의 한(漢)강이 아니라 사람들이 한(恨)을 풀어 버리는 강(江)이라고 신문은 말한다. 사회의 고통과 비극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는 것이다.

“일전 밤 한강 철교에서는 때아닌 국화 타령이 요란하여 강바람과 함께 5월(음력) 염천(炎天)도 쓸쓸한 가을인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이날은 정랑(情郎, 사랑하는 남자)하고 정사(情死)한 황국화(黃菊花)의 시체가 발견되던 날 밤인데 같은 처지에 있는 자들로서는 한 줄기 동정의 눈물을 아끼지 아니 함도 용혹무괴(容或無怪, 괴이할 것이 없음)이며...(중략)...그러나 한강(漢江)이 아니라 한강(恨江)인 것 같이 별별 원한을 모두 이 한강에 와서 풀어 버리는 사람이 한이 없이 늘어가니, 이 한(恨)을 과연 제한할 수 없을까. 한강에 오게 된 뒤에 ‘잠깐 참으시오’ 할 것이 아니라 한(恨)이 강(强)해지기 전에 먼저 잠깐 참는 것이 한 가지 묘책일 듯.”

이어 1925년 7월 2일자 매일신보에는 한강에서 한을 풀어 버린 사람들의 통계가 실린다. “이렇듯 무(無) 이해한 세상을 등지고 사랑에 애태우는 젊은 남녀를 검푸른 물속으로 유인하고자 하는 마(魔)의 한강은 입을 벌렸다. 영생을 수저(水底)에서 구하는, 사랑에 울고 생활난에 우는 청춘 남녀는 한강으로, 한강으로 죽음의 길! 영생의 세계를 찾아 발길을 재촉한다. 한성권번 황국화의 정사 사건으로 인하여 또다시 마(魔)의 한강은 세상의 이목을 끌게 된 것이다. 잠깐만 기다리시요! 소리도 소용이 없고 죽음을 지키는 경관의 감시도 문제가 안 되는 생존 거절자들의 발자취는 대개 한강 철교에 이르러서 무참한 죽음을 하는 것이니, 비록 죽음은 만사를 해결한다 하였으나 어찌 뜻있게 태어난 인생을 스스로 죽인다는 것이 자기를 위하여 죄악이 아니며 세상을 위하여 부끄러움은 일이 아니겠는가. 이미 지난 6월 중에만 남자 5명과 여자 2명의 자살자가 났으며 자살 미수도 역시 남자 8명과 여자 3명이 있었고 다시 금년 중의 누계를 볼 때에는 자살자는 남자 11명, 여자 11명 계 22명, 자살 미수자는 남자 16명, 여자 8명 계 24명에 달하여 그 통계는 여름이 깊어 갈수록 철교의 역사가 오래 갈수록 늘어만 갈 뿐이니 실로 한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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