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서 논설위원

지난달 13일(현지시간) 새벽 이란 수도 테헤란이 순식간에 폭음과 화염으로 뒤덮였다. 이스라엘이 대규모 공습을 감행한 것이다. 작전명은 ‘일어서는 사자’(Rising Lion)였다. 이스라엘은 이란 상공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테헤란 뿐만 아니라 나탄즈 핵시설과 탄도미사일 생산기지, 군 고위직·핵 과학자 거주지 등 이란 각지의 목표물 100여곳에 무차별 선제 공격을 퍼부었다.
한밤 중 허를 찔린 이란은 ‘혹독한 반격’을 천명하며 탄도미사일을 대량으로 이스라엘로 날렸다. 서로 1000㎞ 이상 떨어진 두 나라는 타격을 주고받으며, 사실상 전면전에 준하는 원거리 전투를 벌였다.
결국 미국이 전격적으로 개입하면서 이란-이스라엘 전쟁은 막을 내렸다. 미군의 작전명은 ‘미드나잇 해머’(Midnight Hammer)로, 어둠 속에서 내려치는 강철 망치처럼 단숨에 이란의 핵 시설들을 정밀 타격했다. 특히 이번 작전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끈 건, 미 공군이 처음으로 실전 투입한 초대형 벙커버스터 ‘GBU-57 MOP’이었다. B-2 스텔스 폭격기에 탑재된 벙커버스터 12발이 포르도에, 2발이 나탄즈에 각각 투하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형은 지하 60m 이상까지 침투해 폭발하는 이 ‘괴물 무기’를 전 세계에 보란 듯이 전격 사용하면서 이란에 ‘무조건적 항복’을 요구했다. 벙커버스터는 미국이 세계에 보여준 절대 무력의 선언이자, 첨단 전쟁의 새로운 기준이었다.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 이란은 물러섰다. 이란 국영TV가 지난달 24일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휴전이 시작됐다”고 밝히면서 12일간의 이란-이스라엘 전쟁은 사실상 멈췄다. 더 이상의 충돌은 자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 이란은 ‘백기투항’에 가까운 형태로 휴전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에겐 굴욕이었다. 승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였고, 하메네이는 패자였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이란은 단순한 패자가 아닌 듯 보인다. 겉으로는 고개를 숙였지만 이번 전쟁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바로 핵무장만이 ‘진짜 억지력’이라는 사실이다. 핵무기가 없는 국가는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이란 국민과 권력층 모두가 뼈저리게 절감했다.
이란은 현실을 직시했고, 따라서 국제적 고립을 감수하면서 더 은밀하고 집요한 방식으로 핵무장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식 핵무장 노선을 본격적으로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은 그런 시도를 뒷받침할 역량이 충분해 보인다. 이번 미국의 공격에도 핵시설의 상당 부분을 온전하게 보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이란의 핵 개발 역량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방영된 미 CBS 방송 인터뷰에서 “이란 핵시설의 일부는 여전히 건재하다”면서 “내가 보기에는 이란이 수개월 내로 농축 우라늄 생산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발언은 이란 핵 프로그램이 폭격에 말살당해 수십년 후퇴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를 보면 이란의 핵 위협은 미국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벙커버스터의 파괴력은 강력했지만, 그것이 가져올 후폭풍이 더 무서워진다. 전쟁은 멈췄지만 남겨진 것은 ‘핵의 유혹’이었다. 핵확산금지체제(NPT)의 근본이 흔들릴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습의 잔해 위에서 핵무장의 논리가 자라나고 있다. 세계는 더욱 불안한 핵 균형 위에 놓이게 됐다. 지금 필요한 건 더 많은 무기가 아니라, 협력의 복원이다. 국제사회는 대화의 심지를 다시 붙여야 한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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