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 서울시 서울의료원장

고대 로마는 기원전 753년에 세워져 왕정과 공화정, 그리고 제국시대를 거쳐 476년까지 지속됐다. 그 후에도 이스탄불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제국은 지속됐지만, 로마라는 도시만을 기준으로 해도 1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중해 지역을 지배했기에 ‘1000년 왕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로마는 내분과 갈등 속에서 조금씩 영토를 뺏기면서 서서히 몰락해갔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긴 세월 동안 번영했던 로마가 상당한 기간에 걸쳐 서서히 몰락한 이유에 대한 이론 중에는 납중독이라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1969년에서 1976년 사이의 연구에서 당시 로마인의 공동묘지를 대상으로 450기의 유골을 발굴하여 분석한 결과 일반인에 비해 80배의 납 성분이 검출됐다고 한다. 또 미국 사막연구소에서 그린랜드의 얼음 속에 갇힌 기포를 조사해 기원전 500년부터 기원후 600년까지 시대별 납의 농도를 1조분의 1gm 수준까지 조사한 결과 로마제국의 경제적 부침과 일치했다고 한다. 즉 경제가 활성화되면 대기 중 납의 농도도 같이 높아졌다.

로마인들이 납에 노출되는 경로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우선 화폐인 은화의 원료인 은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납 성분이 풍부한 광물인 방연석을 녹여야만 했다. 이 때 은 1온스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납이 1만 온스나 부산물로 나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다량의 납이 수증기처럼 대기에 확산되어 호흡기로 흡수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수도의 공급이다. 로마는 깨끗한 상수원에서 돌로 된 수로로 물을 끌어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수로로 도달한 물을 상류층에서는 납으로 된 파이프를 통해 따로 공급을 받았다. 쉽게 녹아 가공하기 편하고 녹이 생기지 않는 납은 개별적으로 물을 공급받기에 좋은 소재였다. 그 결과 미량의 납이 물과 함께 섭취된 것이다.

세 번째는 당시 식기와 조리기구들이 주로 납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포도 주스를 납 주전자에 끓이면 단맛이 나는 초산납이 만들어지는데 이를 납설탕이라고도 한다. 납설탕은 포도주를 만들 때는 물론 일반 요리에도 사용됐다.

이렇게 납이 녹아 있는 물을 마시면 어른의 경우 30~50%가 흡수되지만 소아에서는 50% 이상이 흡수되며 어린 유아에서는 발달 장애를 일으킨다. 납은 일반적으로 지능(IQ)을 저하시키고 행동 및 성장 장애를 유발하며 청력도 감소시킨다. 또 남성의 정자 수를 감소시켜 불임을 유발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 보건부는 납이 어린 소아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 문제라고 정의했다. 태아에 미치는 영향이나 모유 수유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지만 동물 실험에서는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납이 해롭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수백 년에 걸쳐 조금씩 흡수된 납으로 인해 인구 증가는 억제되고 지적 능력도 감소하면서 서서히 사회의 활력이 무너져서 멸망하게 됐다는 이론이다. 로마의 몰락이 오직 납 하나만이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어도 일정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은 크다.

현대 사회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주로 봄철에 심하지만 수시로 황사로 덮힌 뿌연 하늘을 보게 된다. 그런데 이 황사에는 공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중금속과 화학물질이 결합되어 있다. 특히 황사와 같이 오는 미세 먼지는 입자의 크기가 작아서 폐를 통해 혈관으로 침투하여 다양한 장기에 손상을 준다.

미세 플라스틱 역시 심각하다. 네덜란드 연구팀에 의하면 건강한 성인 22명 중에서 17명의 혈액에 미세 플라스틱이 있었으며 영국 자료에 의하면 13명의 건강한 폐 조직 중에서 11명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특히 실내 공기 중에서 다량 검출되며 일회용 종이컵이나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티백을 사용할 때마다 수조 개의 미세 플라스틱이 물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세 플라스틱은 동물 실험에서 면역을 억제시키고 항암제 내성을 일으키며 염증을 유발하며 생식능력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아직 사람에 대한 연구는 미흡하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장기간에 걸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