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전남대학교 해양생산관리학과 교수

수산업에도 디지털 기술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자동급이기, 수질센서, AI 기반 생육 분석 시스템까지 다양한 장비가 양식장에 설치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흐름은 기대만큼 달라지지 않았다.
스마트양식 시범단지를 제외하면, 일반 양식장의 디지털 장비 보급률은 여전히 20% 미만이다. 현장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대부분 분석되지 못한 채 단순 저장에 그친다. 기술은 들어왔지만, 산업은 예전의 방식 그대로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기술의 부족함이 아니다. 반대로, 기술만으로 충분하지도 않다. 도입된 기술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데이터는 해석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장비는 작동하지만, 산업 전체는 정지되어 있다. 기술과 기술 사이, 기술과 사람 사이, 기술과 정책 사이의 단절이 지금의 문제다.
해외에서는 기술이 다르게 쓰이고 있다. 덴마크의 ‘옥시가드’(OxyGuard)는 센서를 판매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클라우드 기반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운영에 반영한다. 일본 ‘우미트론’(Umitron)은 물고기 행동을 AI로 분석해 사료 공급을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상용화했다. 하드웨어에만 집중하지 않고, 운영 알고리즘을 중심에 둔 접근이다.
특히 노르웨이의 ‘바렌츠워치’(BarentsWatch)는 자원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위성영상, 해양환경 정보, 어군 데이터를 통합해 어군 이동을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이를 정책 결정과 어업 활동에 활용한다. 과학과 기술이 산업 운영의 중심으로 들어간 사례다.
이러한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기술을 시스템 안에서 운용’한다. 기술이 산업의 흐름 속에서 작동하도록 운영 질서를 먼저 설계한 것이다.
반면 한국은 장비 중심 접근에 머물러 있다. 중소기업이 만든 제품은 실증 기회가 적고,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아 조달과 수출로 이어지기 어렵다. 장비는 있으나 통합은 없고, 데이터는 있지만 방향이 없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 더 많은 기술을 넣는 것보다, 이미 도입된 기술들이 제대로 연결되고 운영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다음 다섯 가지가 핵심 과제다.
첫째, 수산기자재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기술개발, 실증, 표준화, 조달, 수출까지 연결되는 생태계가 필요하다. 특히 중소기업이 현장에 기술을 적용하고 공공조달을 거쳐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사다리를 갖춰야 한다.
둘째, 기술을 다룰 사람을 제대로 길러야 한다. 수산 현장의 고령화는 심각하다. 60세 이상이 절반을 넘고, 젊은 인재는 진입조차 어렵다. 기술 인프라·현장 실습·창업 지원·지속 교육으로 이어지는 ‘인재 순환 구조’가 필요하다. 결국, 기술은 사람이 운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작동한다.
셋째, 장비 간 연동성과 데이터 호환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는 같은 양식장 내에서도 장비마다 통신 방식, 데이터 형식이 달라 통합 분석이 어렵다. 공통 표준 없이 데이터는 흘러가지 못하고 쌓이기만 한다. 개방형 플랫폼 기반의 연동 질서가 절실히 필요하다.
넷째, 자원관리와 양식 운영은 예측 기반으로 바뀌어야 한다. 노르웨이처럼 다양한 데이터를 통합해 어군 이동을 예측하고 정책에 반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양식장에서도 수온, 산소, 성장률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급이, 수질, 질병 대응까지 조절할 수 있는 운영 중심 플랫폼이 요구된다.
다섯째, 유통과 가공 시스템도 디지털화와 ESG를 중심에 둬야 한다. 이력 추적, 탄소저감, 식품안전 기준은 이미 글로벌 수산시장에서 기본이 됐다. 하지만 국내는 수작업 가공과 분절된 유통망에 머물러 있다. 자동화 설비, 공동물류, 국제 인증까지 연계된 유통 체계 개편이 산업 지속성의 관건이다.
지금 한국 수산업에는 기술, 예산, 정책이 부분적으로는 마련돼 있다. 그러나 산업은 기술의 나열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기술을 연결하고, 사람이 이해하며, 데이터가 흐를 수 있게 해야 산업이 움직인다. 산업은 흐름 속에서 진화하고, 연결될 때 성장한다. 지금 수산업이 필요한 것은 장비가 아니라, 방향과 질서를 설계하는 시선이다. 기술의 다음은 ‘통합된 흐름’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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