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균 편집국장

2017년 8월 2일의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값 과열을 막기 위해 이른바 ‘8·2 대책’을 발표했다. 약 45일 전 내놓은 ‘6·19 대책’이 오히려 집값 오름세에 기름을 붓자 ‘빨리빨리’ 두 번째 대책을 던졌다. 시장 예상을 훨씬 넘는 초강수였다. 각종 규제를 신설·부활해 재건축·재개발 투기를 차단하고 갭투자와 다주택자의 주택 매입을 한꺼번에 틀어막는 강공책이었다.
그날 저녁 이 대책 마련에 관여한 청와대 고위 인사 A씨와의 만남이 있었다. 대책 발표 전 잡은 약속이었지만 선약이었지만 화제는 자연스럽게 ‘8·2 대책’의 효과에 맞춰졌다.
A씨는 내심 ‘특효 대책’이라는 평가를 기대하며 참석자들의 입에 주목했다. 하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공급이 문제인데, 규제 제일주의로 시장이 진정될까”, “규제가 시장을 이길 수 있을까”라는 반문이 대부분이었다.
A씨는 뜻밖의 발언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더 강한 규제책을 내놓을 것이다. 시장의 예상을 한 단계, 아니 두 단계 뛰어 넘은 대책을 선제적으로 내놓으면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얼굴에는 ‘밀어붙이면 시장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결국 당시의 ‘8·2 대책’은 ‘9·5 대책’, ‘12·24 대책’ 등 릴레이 규제책을 낳았다. ‘서울 시내 공급이 충분하다’는 규제 일변도의 대책은 급기야 집값 광풍을 불러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렇게 탄생한 부동산 망령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와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 시장에서는 부족하다고 아우성인데, 나홀로 충분하다고 외친 반(反) 시장적 독선이 낳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역대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사실 규제 강화와 규제 완화의 도돌이표였다. 집값이 오르면 캐비넷 속 규제책을 꺼내고, 집값이 내리면 건설 경기를 살린다며 이를 슬그머니 푸는 익숙한 행동을 되풀이했다.
일단 시작은 책임 전가다. 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빚내서 집사라’를 주범으로 겨냥했다. 윤석열 정부는 문 정부의 옥죄기 정책을 탓했다. 새 정부 역시 윤 정부의 돈풀기와 재건축 등에 대한 규제 완화 탓을 하고 있다.
대책을 만들면서도 득표수를 기준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내편 인가, 내표 인가’를 따졌다. 이념이 그 잣대였다.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 모두 이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 정부가 서울 강남만 옥죄니 준 강남과 수도권까지 풍선 효과가 퍼졌다. 바톤을 넘겨 받은 윤 정부는 경기를 살리겠다면 규제 완화를 부르짓고, ‘예외’를 허용했다. 그렇게 사업 좌초위기로 까지 몰렸던 둔촌주공(올림픽파크포레온)은 갖은 특혜 속에 강남급 부촌 아파트으로 재탄생했다. 그 와중에 지방의 돈은 서울로 몰렸고, 그 곳에는 미분양 아파트 무덤만 남았다. 무엇보다 오만했다. 시장을 손에 넣고 주무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멀리 내다보는 공급대책은 등한시했다.
다시 급등하는 서울 집값에 이재명 정부도 지난 27일 첫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첫 대책부터 일단 막강 화력을 과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6억원 이상 대출 제한+대출시 6개월 입주 의무화’로 요약되는 ‘6-27 대책’의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일단 시장에는 강한 ‘시그널’을 던졌다.
눈길을 끄는 것은 대통령실의 태도다. 모양새가 의아하다. 주체가 부동산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아닌 금융위원회다. 알맹이는 ‘부동산 대책’이지만, 포장은 ‘가계부채 대책’으로 읽힌다. 대통령실은 굳이 ‘금융위 대책’ 이라며 현 정권의 부동산 대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추측은 무성하다. 혹자는 새 정부가 무모한 규제 강화로 폭등 광풍을 불러온 문 정부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하다고 평한다. 이번 대책은 일단 맛보기로, 아파트값이 진정되지 않으면 보다 강한 규제책을 내놓기 위한 ‘간보기’라는 평도 있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태도가 반영된 결과라는 긍정적 분석도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 ‘규제보다는 공급’을 약속했다. 일단 금융 대책으로 급한 불은 끄고, 긴 호흡의 공급 대책을 내놓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29일 발표한 개각 명단에 국토부 장관이 빠진 것도 이 맥락에서 해석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국정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49%)을 껑충 넘어 60%를 돌파했다. 한 로펌 인사는 “‘을(乙)의 자세’로 듣고,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모습에 안도감을 표하는 중도층이 많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이번 부동산 대책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감도 있다. 과거와 절연하는 뭔가 다른 부동산 대책을 제시해달라는 ‘희망 편지’일 수도 있다. 상법 개정안, 양곡법, 노란봉투법,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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