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울산시 중구 한국석유공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국석유공사 등 12개 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울산시 중구 한국석유공사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국석유공사 등 12개 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25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향해 "한은 총재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시장 구두 개입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며 "자숙하고 본래 한은의 역할에 충실하게 관리를 잘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다. 이 최고위원은 "한은 총재가 할 말이 있으면 대통령 면담을 신청하든가, 대통령실에 조용히 전달하면 되지 '언론 플레이'를 할 일이 아니다"라면서 "정치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여당의 최고위원이 독립성이 보장된 중앙은행 총재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귀담아 들을 만한 내용이 있다. 무엇보다 이 총재는 이 최고위원의 지적처럼 한은 고유의 역할과 기능을 벗어나는 발언을 적지 않게 했다. 지난해 9월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서울 집값 상승을 잡기 위해 강남 출신 학생에 대한 대학 입학 상한선을 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앞서 한은은 지역별 학령인구 비율을 대학 입시 정원에 반영해 지방(비수도권) 인재에게 좋은 대학 교육 기회를 더 많이 부여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올 1월에는 최상목 전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해 "불가피한 결정으로 본다"는 논평도 한 적이 있다. 기획재정부 장관의 권한인 추경 편성 여부에 대해서도 추경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명백히 한은 총재의 역할과는 거리가 먼 발언들이다.

한은은 한국은행법에도 명시된 것처럼 물가를 안정시키는 게 제일의 목표다. 법에는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나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안정에도 유의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의 저성장 기조 정착 우려와 관련해선 고비용 구조의 개혁과 신산업 육성을 줄곧 주장해왔다. 중앙은행 총재가 물가나 금융안정 외에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렇지만 대학 입시나 헌법재판관 임명 등의 분야까지 발언 범위를 넓히는 것은 오지랖이 넓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크다. 게다가 고유 임무인 물가 안정에 한은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의문이다. 2020년 0.5%에 그쳤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2년 5.1%로 무려 10배 이상 치솟았다. 한은이 목표로 하고 있는 2%보다도 두배 이상이다. 지금은 2%대 전후로 떨어졌지만 한은의 노력보다는 국제 원자재 시세 등 외부요인에 기인한 것이 더 컸다.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물가는 최근 몇년새 두배 이상으로 치솟았다. 또 원화 환율은 2020년 달러당 평균 1086.3원에서 25일 현재 1362.4원으로 무려 25% 이상 뛰었다. 원화 가치가 추락한 것이다. 미국보다도 낮은 기준금리 정책으로 물가를 잡지 못하고 원화 가치도 안정시키지 못했으며, 과도한 시중 유동성을 유지해 수도권 집값 불안의 큰 요인을 제공했으면서도 본연의 임무를 벗어난 '엉뚱한' 얘기만 해온 것이다. 이 총재가 정치라는 잿밥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닌지 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제롬 파월 미 연준(Fed) 의장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한 압력에 맞서 물가 안정이 뚜렷해질 때에나 검토할 사안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 폴 볼커 연준 의장은 경기 침체를 감수하면서까지 금리를 연 20% 수준으로까지 올려 오일파동에 따른 물가 급등을 잡은 적이 있다. 물가가 치솟으면 경기 침체 이상으로 서민에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여당 의원의 고언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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