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도시 스토리 텔러
고층 아파트에 매몰된 삶, 공동체를 잃다

콘크리트 숲 대신 골목과 공원 품어내야

용적률 완화보다 삶의 질을 먼저 올리길

보리수 열매를 함께 따는 터전을 꿈꾸며


신록이 더 없이 청신한 계절이다. 오븐에서 잘 구워진 것 같은 '콘크리트 파이'들이 도심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이솝우화 '여우와 학'에서 여우는 넓은 접시에 음식을 담아 학을 대접하지만, 부리가 긴 학은 그것을 먹지 못한다. 며칠 뒤 학은 목이 길고 좁은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대접하지만, 이번에는 여우가 먹을 수가 없다.

우리 도시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지 않을까? 땅은 좁고 건물은 길다랗다. 인구소멸 위기에 빠진 소도시, 심지어는 농촌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 땅을 딛고 서 있는 집이 아니라 공중에 매달린 듯하다. 마치 여우에게 호리병 속 음식을 건네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 주거 환경에 길들여지고 있다.

고층 주거단지는 정치적 자산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고층 아파트를 주요 주거 형태로 채택한 나라다. 단지 개발의 효율성과 자산 증식의 수단이라는 명분 아래, 사람의 사용성과 '삶'보다 공급량과 수익성이 우선시된다. 건폐율(대지 위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 비율)과 용적률(대지 면적 대비 총 연면적 비율)이 모두 높다. 이윤 때문이다.

고층 아파트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제한된 국토에서 많은 인구를 수용하고, 현대적 편의시설, 보안, 관리 효율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인간적 삶의 질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대가를 치르기도 한다. 24시간 보안과 첨단 엘리베이터는 편리하지만, 이웃 간 자연스러운 교류가 차단되고, 야외 공간은 제한된다.

사람의 눈높이, 보폭, 감각적 거리 같은 휴먼 스케일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높은 토지 가격과 조망 프리미엄, 고층일수록 '고급'이라는 기묘한 이미지가 은연 중에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고층 주거단지의 노년층은 단독주택 지역보다 사회적 고립감이 높을 수 있으며, 이는 정신 건강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복지 예산으로 수습되지만, 근본 원인인 도시 구조는 외면당한다. 예컨대, 정부의 '공공임대주택 확대 정책'은 공급량에 초점을 맞추며, 고층 고밀 설계를 유지해 고립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소도시와 농촌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구 유입을 위해 고층 아파트를 짓지만, 오히려 젊은 층 이탈로 인해 고령층만 고층 아파트에 남겨지기도 한다.



해외 도시는 도시를 낮추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주거 지역을 5층 이하로 제한하고, 자전거와 보행 중심 설계로 도시의 감각을 살려내고 있다. 일본 도쿄는 교외 주거 지역에서 2~3층 연립 주택을 보편화해서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는 사람이 먼저 걷는 생태 도시의 모범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4~5층 연립 주택으로 강남구와 비슷한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1층에서 바로 공원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통해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이기도 한다.

유럽의 도시들은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도시 구조로 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개발 여건을 누렸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도시화 과정에서 단기간에 대량의 주택을 공급해야 했던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양적 성장에서 질적 개선으로 전환할 시점이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아파트 공급량을 늘려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분양 아파트가 남아돌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한국에서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 부동산에 거주하고 싶지 않아도 고층 아파트에 앞다투어 투자한다.

단순히 고층 아파트를 없애는 것은 답이 아니다. 한국의 인구 밀도와 토지 제약을 고려할 때, 고층 구조를 보완하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저층 고밀 주거를 도입해야 한다. 4~6층 연립 주택으로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공동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고층 아파트 단지 내 1층을 커뮤니티 센터나 소규모 상업공간으로 전환하고, 중간층에 공용 정원을 조성해 주민 교류를 촉진해야 한다. 셋째, 보행자 중심의 도시 설계를 강화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용적률 인센티브를 재검토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고층 아파트 건설 시 용적률 완화 혜택을 제공하는데, 이를 저층 고밀 주거나 공용 공간 확충 조건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은 저층 주거단지에 녹지 공간을 포함시킬 경우 세제 혜택을 제공한다. 또한,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주거 정책이 필요하다. 소도시에서는 고층 아파트 대신 지역 문화를 반영한 저층 주거단지를, 농촌에서는 전통 마을과 연계된 소규모 주택 지원 같은 현실적 대책이 필요하다.

문제는 판단 기준에 있다. 도시는 몇 세대를 수용하느냐가 아니라, 한 세대가 얼마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느냐로 평가되어야 한다. 고층 고밀 주거는 시공비를 줄일 수 있지만, 정신 건강 악화와 사회보장비 증가라는 간접 비용을 초래한다. 일부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고립과 관련된 정신 건강 상담 및 치료 비용은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가 아니라 감각과 정서가 깃드는 공간이어야 한다. 용적률은 수익이 아닌 인간의 감각을 살리는 도구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도시를 낮추는 일은 층수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사람의 감각을 되돌리는 윤리적 전환이다.

'이곳이 정말 나를 위한 집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면, 미래의 도시는 삶이 있는 곳이 아닌, 비용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구조물의 집합체가 될 것이다. 건축이 정치적 자산이기에 앞서 삶의 자산이 되어야 할 때다. 이제는 여우에게는 넓은 접시를, 학에게는 긴 호리병을 내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콘크리트 파이 대신, 빨갛게 익은 보리수 열매를 따서 나눠 먹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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