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7년 이상 상환하지 못한 5000만원 이하 개인 채무를 일괄 탕감해주기로 하자 형평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와 고물가, 고금리 속에 신음해온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숨통을 틔워주겠다는 취지 자체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업종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상 모든 자영업자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영업이라는 이름 아래 유흥업소, 심지어 도박·사행성 사업을 하는 이들까지 형식적으로 사업자로 등록돼 있으면 탕감 대상이 되는 구조다. 정부는 "개인의 삶을 구제하는 게 목표이다 보니 어떤 직종에 종사했는지, 사업 내용은 무엇인지 따지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하지만, 국민의 상식과 윤리의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채무 탕감은 국민 세금이나 공적 자금으로 뒷받침된다. 따라서 그 사용처에 대한 엄격한 기준과 국민적 합의는 필수다. 자칫하면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대다수 소상공인·자영업자들만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만 바보'라는 위험한 사회적 메시지를 줄 수 있고, 이는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로 이어진다. 물론 벼랑 끝에 몰려있는 이들에게 일정 수준의 재기 기회를 주는 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재기의 기준은 '정상적인 영업'과 '책임 있는 채무'라는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 도박이나 유흥업은 애초부터 고위험 업종이자 사행적 성격을 띠는 영역이다. 사회적 가치나 공익성과도 거리가 먼 업종에까지 적용하는 건 제도 설계 취지와 맞지 않을 것이다.
기준이 공정하고 명확해야 한다. '전 국민을 위한 포용 금융'이라는 구호를 앞세운 채 실효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그 후폭풍은 결국 모든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적 공감대를 잃을 수 있음은 물론, 국가 정책의 도덕적 정당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채무조정 대상 업종에 대한 합리적 제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 설계와 집행 과정에서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하는 제도 운영을 확립해야 하는 것이다. 지원이 필요한 곳엔 더 강하게, 그러나 가려서 정교하게 돕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공공 채무조정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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