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들어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대통령실에 전달할 마땅한 소통 채널이 많지 않아 걱정이 큽니다."
최근 들어 과학기술 관료뿐 아니라 과학기술계가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새 정부에서 과학기술 분야 존재감이 좀처럼 수면 위로 부각되지 않고 있어서다.
우선, 지난 6일 단행된 대통령실 조직개편에서 존치 또는 역할 확대를 기대했던 과학기술수석이 폐지되고 과학기술연구비서관으로 격하되자, 과학기술계는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다. 그 사이 누가 내정될 지 뜬 소문도 없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기업인 출신 AI 전문가인 배경훈 LG AI연구원 원장이 내정됐다.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에 이어 또다시 AI 전문가가 발탁됨에 따라 과학기술계는 과학기술 인사를 완전히 배제시킨 '과학기술 패싱' 인선이라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차례 단행된 부처 차관 인사에서도 과기정통부 차관은 임명되지 않았다.
이처럼 과기정통부는 국가 미래 혁신을 준비하는 부처 위상에 걸맞지 않게 국가적 관심에서 한 발 벗어나 있는 듯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소위 '이재명 대통령의 사람들'로 불리는 성남·경기 라인, 전문가 그룹, 친(親)명·신(新)명계 등 그 어디에도 과학기술계를 대변해 줄 인사와 인맥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로선 이재명 정부에서 과학기술계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할 적합한 소통 채널이 마련돼 있지 않을 뿐더러,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과학기술 관련 자문을 해 줄 마땅한 인적 자원과 네트워크가 사실상 실종돼 있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새 정부에서 과학기술이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국가 혁신 성장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할 지 과학기술계의 고민과 걱정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나마 이재명 정부의 'AI정책' 사령탑을 맡은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이 과학기술 시민단체 역할을 해 온 '바른 과학기술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과실연)' 공동대표로 활동한 '친과학기술계 인사'라는 점은 다행이다.
다만 하 수석이 AI 외에도 과학기술, 바이오, 기후, 환경, 에너지는 물론 인구정책, 저출생 등 국가·사회 현안 업무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국정 운영에 있어 시급성과 중요도가 떨어지는 과학기술을 꼼꼼히 챙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서 이를 두고 '과학기술 소외·홀대'라는 말을 꺼내기 다소 이른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새 정부의 향후 5년 간의 국정 운영 청사진을 한창 그리고 있는 현재의 상황만을 보면 과학기술계가 느끼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
과학기술계는 조기 대선 과정에서 어떤 분야보다 대선 후보들에게 대한민국의 미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아낌없는 정책적 제언과 건설적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계 단체들은 차기 정부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정책 제안과 어젠다 발굴 및 제시, 공약 검증 토론회까지 여느 대선 때보다 선제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등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글로벌 기술패권 가속화에 따른 기술 주권 확립과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과학기술 지원 강화와 투자 확대를 당부했다.
과학기술계는 윤석열 정부에서 R&D 예산 삭감으로 거센 풍파와 시련을 겪었다. 젊은 연구자들은 연구실을 떠나갔고, 연구비 삭감으로 연구실은 문을 닫거나 축소되는 등 연구 생태계에 커다란 생채기를 냈다.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다.
지금껏 역대 정부는 과학기술을 국정 운영의 중심에 두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고, 과학기술계를 향해 지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진정성이 담겼다기 보다는 언어적 수사에 그친 정치적 제스처였을 뿐이었다.
이에 반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전 정부처럼 R&D 예산을 삭감해 연구개발의 길을 막는 일은 하지 않겠다며 과학기술 공약으로 R&D 예산 확대와 국가 R&D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새 정부가 이를 번복하지 않고 전 정권에서 고립무원에 처했던 과학기술계에 새로운 우군풍후(友軍豊厚)가 돼 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