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공군의 B-2 스텔스 폭격기가 이란 핵시설을 타격하면서 미국 사회가 다시 한번 격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였습니다. 백악관은 '전략적 위협 제거'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또 다른 전쟁에 미국이 끌려 들어가선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
이번 이란 공격에 있어 초미의 관심사는 이란의 보복 공세로 인해 전쟁이 어느 정도까지 확대될 지의 여부입니다. 이란은 내우외환 속에서도 여전히 만만찮은 전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처럼 대대적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선 굴복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특히 이란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라크,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국 미군기지를 공격하거나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5%가 지나는 '세계의 에너지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보복에 나설 경우 미국의 추가 군사개입이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자칫 지상군을 동원할 상황이 된다면 과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경험한 수렁이 재연될 수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상당기간 막대한 전비를 써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공격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으나 침공 빌미가 됐던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지 못했고, 권력 공백을 틈타 준동한 무장단체들과의 싸움에 피와 돈을 쏟아붓다가 2011년 군을 철수시켰지요. 앞서 2001년에는 9·11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역시 20년 만인 2021년 쫓겨나다시피 철군했습니다.
그래서 미 정치권은 대체적으로 군사개입을 꺼려해 왔지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층조차 반대 기류가 강합니다. 이코노미스트와 유고브가 지난 13~16일 조사해 18일 공개한 내용을 보면 지난 대선 때 트럼프에 투표했다는 이들 가운데 53%는 이스라엘-이란 간 분쟁 개입에 반대했습니다. 찬성은 19%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응답자 중 미군이 이스라엘과 이란 분쟁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답한 비율은 60%였습니다. 또한 응답자의 63%는 이란 핵 프로그램 문제에 대해 미국이 협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은 18%에 그쳤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인 마가(MAGA) 진영 내에서도 내분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란 개입을 둘러싼 견해차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18일 마가 진영의 대표 인사인 보수 논객 터커 칼슨의 개인 방송에서였습니다. 방송에서 칼슨은 이란 정권 교체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게 면박을 주었지요. 칼슨이 "이란 인구가 얼마인지 압니까?"라고 물어보자 크루즈 의원은 "모릅니다"고 답변했죠. 그러자 "정권을 전복하려는 나라의 인구도 모르냐"면서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칼슨은 "이란의 인구 수가 9200만명"이라고 지적했고, 크루즈 의원은 당황하면서 "알았다"고 답하며 대화를 마무리 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전쟁은 없다"고 선전해 온 스스로의 말을 뒤집으면서 이란에 B-2 폭격기를 띄웠습니다. 여기서 논란이 되는 것은 의사결정 과정입니다. CNN 방송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시설을 공습하기 전에 연방의회의 공화당 주요 인사에만 공격 계획을 설명하고, 통상 이런 정보를 함께 받게되는 민주당 인사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지금 미국은 정치 양극화로 인해 내부적으로 깊은 균열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전면전을 떠안는다면, 사회 전체가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위험이 큽니다. 지금 미국에 필요한 것은 무력 개입이 아니라, 분열을 치유할 수 있는 리더십입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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