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 이유' 주주설득 작업 불가피
상법 적용땐 개별소송 여지 생겨
노란봉투법 통과시 생산차질 감내

한화오션 하청 노조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사옥 앞에서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의 고공농성 해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장우진 기자
한화오션 하청 노조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사옥 앞에서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의 고공농성 해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장우진 기자


새 정부가 주주가치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과 하청노동자 등의 교섭권 보장 등을 담은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일명 노란봉투법)을 동시에 추진하는 가운데, 최근 한화오션 노사 사태가 화두로 떠올랐다.

경영진이 노조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할 경우, 주주들이 파업에 따른 손실을 왜 보상받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두 법안이 '충돌'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서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오션은 2022년 하청 노조에 제기한 470억원 규모의 손배소 취하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를 단순 취하할 경우 경영진 배임 등에 해당할 수 있는 만큼, 법적 검토와 이사진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비슷한 사례가 등장할 경우 이 작업을 주주로 확대해야 할 가능성이 나온다. 모든 주주에게 '손배소 취하의 이유'를 설득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시간이 투입되는 것은 물론 수용 가능성도 장담하기 어렵다. 회사의 대승적 결정조차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재계 관계자는 "불법 파업으로 손실이 나도 잘못을 물을 수 없고, 오히려 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면 책임만 져야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며 "회사가 손배소 취하 등의 대승적 결정을 내리면 노조도 '불법파업 재발 방지' 등 최소한의 약속이라도 해야 이사회든 주주든 설득이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따졌다.

특히 상법 개정안이 적용되면 주주대표소송이 아닌 중복 주주별로 각각의 이사에 대한 개별 소송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들이 미래 경영 전략보다 소송에 시달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될 경우 회사는 불법 파업 등으로 인한 생산 차질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며, 이는 하청 노조에도 포함된다. 주주 입장에서는 파업으로 회사가 생산차질 등의 손해를 당했는데도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물을 수도 있다.

특히 한국의 노사관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외국계 주주의 경우 이를 빌미로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당장 이번 한화오션 사례가 상법 개정 후에 적용될 경우만 해도 주주 설득을 위한 작업이 불가피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노사 모두에게 화살이 날아갈 수 있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화오션의 사례는 상법과 노동법이 서로 다른 가치를 지향하면서 실제 기업 경영에서 충돌 가능성이 존재함을 보여준다"며 "기업은 이사회뿐 아니라 주주와 노조를 동시에 설득해야 하는 이중 의사결정 부담을 떠안게 돼 빠른 경영 판단과 실행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송 남발, 투기펀드의 경영권 침해 등이 우려되는 만큼, 일관된 경영 정책을 펴기 위한 방안으로 현재 추진되는 상법 개정안이나 노동법에 대한 보완 또는 예외 조항 등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김 교수는 "주주 권리를 강화하는 개정 방향은 긍정적이지만 경영진의 선의의 판단 공간이 완전히 위축되지 않도록 예외조항, 예를 들어 파업 종료 협상을 위한 손배소 취하 등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며 "노조 활동에 대해서는 파업이 명백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실일 경우에는 일정 부분 손해배상 청구의 가능성도 열려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계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 주장은 타당하다. 기업이 효율적 의사결정과 장기적 이해관계 조율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돼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이 확보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노동자와 주주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공동의 이해관계자'라는 철학 아래, 양자의 가치를 조화롭게 반영하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글·사진=장우진기자 jwj1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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