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1일(현지시간) 이란 포르도, 나탄즈, 이스파한 등 3개 핵시설을 전격 타격하면서 미국이 다시 '중동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우려가 국제사회에서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은 이제 전쟁을 끝내는데 동의해야 한다"며 앞으로는 외교적 수단으로 이란 문제를 해결할 뜻임을 내비쳤지만 이란과 반미 이슬람 세력이 항전을 선택할 경우 장기간의 무력 분쟁이 불가피하다. 이 경우 미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과 벌였던 '테러와의 전쟁'의 악몽을 시즌2로 마주해야 할 수 있다는 경고가 국제사회에서 나온다.
이란은 미국의 오랜 경제 제재와 이스라엘의 최근 기습공격으로 국력이 예전같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인구 9000만명에 세계 석유 7위·천연가스 3위(생산량 기준) 에너지 강국이자 종교적 신념으로 똘똘뭉친 이란을 미국이 이번 공격으로 완전히 굴복시키긴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은 당분간 외교적 수단을 강구하겠지만 결국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고서는 항복을 받아내고 핵능력을 무력화시키기 어려울 것이란 뜻이다.
미국이 아무리 세계 최강국이라지만 외국에서의 군사 행동은 쉽게 성공하기 어렵다. 특히 상대가 집요하게 저항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미국은 악화하는 국내 여론과도 싸워야 한다. 한마디로 군사·정치적 수렁에 빠지게 되는 것인데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모두 양상이 비슷했다.
무엇보다도 이란은 보복 카드가 많다.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5%가 지나는 '에너지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보복에 나설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변의 친미국가와 이라크에 주둔한 미국을 타깃으로 삼을 수도 있다. 중동 내 이슬람 반미국가의 총궐기를 유도해 판을 키우는 방법도 있다.
이럴 경우 미국은 지상군을 동원해야만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과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경험한 수렁이 재연될 수 있다. 지상군을 투입하지 않는다고 해도 오랜 기간 막대한 전쟁 비용을 투입해야만 상황을 관리할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실제 미국은 2003년 이라크전을 시작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냈지만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를 찾지 못해 국제사회의 비판과 싸늘한 국내 여론에 직면했다. 권력 공백을 틈타 준동한 무장단체들과의 싸움에 피와 돈을 쏟아붓다가 2011년에야 철수했다.
2001년에는 9·11 테러의 배후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나 20년 만인 2021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결정으로 도망치다시피 철군하며 망신을 당했다.
미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 전쟁으로 이란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정권이 붕괴한다고 해도 이는 미국 입장에서 또다른 고난의 시작이 될 거란 얘기가 나온다. 이란 전역이 무정부 상태에 빠지거나 기존 정권보다 더 강경한 세력이 주도권을 잡을 경우 기존 시스템으론 예측·예방할 수 없는 소규모 무력 행위가 일상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무장단체의 손에 핵물질이 흘러들어갈 경우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핵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다른 함정은 미국이 장기전에 휘말릴 경우 '중동을 안정시키고 중국 견제에 집중한다'는 미국의 세계 전략이 어그러지게 된다는 점이다. 버락 오마마 행정부때부터 이어온 미국의 리밸런싱 전략이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에 대해 가장 강경한 트럼프 행정부에서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내 사립대의 한 교수(정치학)는 "미국이 중동정세 관리에 국력을 집중하게 되면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활동 공간이 넓어지게 된다"면서 "자칫 중동의 저항과 중국의 물밑 공세를 동시에 막아야하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유진아기자 gnyu4@dt.co.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백악관에서 이란 핵시설 공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