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없는 시대, 조폐공사 '디지털로 전환'
디지털 신분증부터 모바일 바우처까지

한국조폐공사 제공.
한국조폐공사 제공.
한 달 전 지갑 속에 넣어둔 오만 원 권 지폐 한 장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커피 한 잔을 살 때도, 마트에서 장을 볼 때도, 영화 한편을 볼 때도, 심지어 자판기에서 음료 하나를 뽑을 때도 손이 먼저 가는 건 현금이 아니라 카드나 스마트폰이다. '현금 없는 사회'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일상 속에서 조용히 진행 중인 변화다.

이러한 변화의 한복판에 바로 '돈'을 만드는 한국조폐공사가 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조폐공사의 매출 대부분은 지폐와 동전을 찍어내는 데서 나왔다. 그러나 2024년 기준, 화폐 제조 사업의 매출 비중은 24% 수준으로 줄었다. 누군가는 이를 '위기'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폐공사는 이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고 있다.

첫째, 조폐공사는 이제 단순히 화폐를 만드는 기관을 넘어, '화폐를 넘어선 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조폐공사의 제품이 단순한 결제 수단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문화와 예술, 상징성을 담은 고부가가치 문화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기념주화, 기념 메달, 화폐 요판화, 화폐굿즈 등이 있으며, 이는 조폐공사의 정교한 화폐 제조 기술을 문화 콘텐츠에 접목해 스토리를 입힌 결과물이다. 이러한 변화는 조폐공사가 단순한 제조 기관을 넘어, 국가 브랜드를 문화적으로 해석하고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새롭게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이다.

둘째,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며 조폐공사의 사업 영역도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정밀 인쇄 기술과 위변조 방지 기술, 그리고 블록체인 등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디지털 신분증과 모바일 인증, 전자지급결제 시스템 등 ICT기반의 신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운영중인 '모바일 상품권 플랫폼'은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국민 누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편의성과 디지털 접근성을 높인 혁신적인 시도다. 더 나아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신원인증 디지털 ID도입과 모바일 자격증, 전자 바우처 플랫폼으로까지 사업을 확장하면서, 조폐공사는 '보안 기반 디지털 서비스 기업'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다.

셋째, 은행권 지폐용 특수종이와 보안인쇄용 특수잉크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수출기업으로서의 입지도 굳건히 다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지폐 제조용 특수종이와 면펄프는 수천만 달러 규모로 수출되고 있으며, 스위스·캐나다·우즈베키스탄 등에는 특수 잉크와 안료를 수출하며 글로벌 보안 시장에서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국내 민간기업과 협업해 개발한 'K-보안잉크'는 해외 조폐기관에 수출되며, 대한민국 특수보안기술의 해외 진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조폐공사는 전통적인 화폐 제조를 넘어, 보안과 위변조 방지 기술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제품을 통해 신뢰 기반의 수출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결국 조폐공사는 단순한 제조 공기업을 넘어 '디지털 신뢰 플랫폼'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신뢰는 국가 운영의 핵심 기반이며, 그 신뢰를 가장 앞단에서 책임지고 구현하는 조직으로서 조폐공사는 자신만의 역할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금 없는 사회'는 물리적인 지폐와 동전이 사라진다는 뜻일 뿐, 화폐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역할은 더 정교해지고, 보안은 더 중요해지며, 문화와 기술의 결합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디지털 속 자산은 이전보다 훨씬 무거운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조폐공사의 생존은 단순한 조직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어떻게 '가치'를 정의하고 전달하며 신뢰를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질문과 연결된다. 그리고 조폐공사는 그 해답을 '디지털', '문화' 그리고 '수출'이라는 키워드로 풀어가고 있다.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본질을 지켜내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생존의 방식이다.

우진구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장
우진구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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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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