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전통 환대 문화의 풍경
움직이기 시작한 사우디 여성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식당에서 주문한 전통 음식들이 식탁 위에 가득 차려져 있다. 사진=강승구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식당에서 주문한 전통 음식들이 식탁 위에 가득 차려져 있다. 사진=강승구 기자
"여기 차려진 음식들을 다 먹으라고요?"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자, 커다란 접시에 담긴 요리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전통 음식인 '마글루바'는 밥 위에 고기와 채소를 층층이 쌓아 익힌 뒤, 냄비째 거꾸로 뒤집어 접시에 담는 요리다. 중동 지역에서 먹는 대표 메뉴 중 하나다. 식탁에 아슬아슬하게 걸칠 정도로 가득 쌓인 음식을 보고 "다들 원래 이렇게 많이 먹나요"라고 묻자, 현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게 바로 사우디의 환대 문화"라고 답했다.

사우디의 환대 문화는 유목민 '베두인'들의 생활 방식에서 비롯됐다. 황량한 사막에서 누군가와 마주 앉아 차를 나누는 순간은 그 자체로 특별한 환대였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아랍 무슬림들은 손님을 사흘간 대접하는 것을 기본적인 예의로 여겼다. 환대 문화는 오랜 세월 전통이자 미덕으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에도 사우디 곳곳에서 이어졌다.

환대 문화는 사우디의 일상 속에도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처음 보는 이방인에게도 음료나 차를 권했고, 책상 위엔 대추야자와 간단한 다과가 빠지지 않았다. 인터뷰 중에도 누군가 다가와 "커피 드릴까요?"라며 잔을 채웠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간식이 끊임없이 놓였고, 빈 잔에는 어느새 커피가 채워졌다. 더는 마시고 싶지 않아도 분명히 거절하지 않으면 잔을 계속 채우는 것이 사우디식 예의라는 말을 뒤늦게 들었다.

사우디의 극진한 환대는 모든 이에게 주어지는 듯했지만, 그 따뜻함은 선택적이었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친 사우디 여성들은 환대의 울타리 밖에 서 있었다. 그들은 온몸을 가리는 검은색 겉옷 '아바야'를 입고 다니며 조용히 다녔다. 복장 제한은 외국인 여성도 예외가 없다. 모스크 등을 들어갈 땐 얼굴을 제외한 목과 팔, 다리를 가리거나, 아바야를 착용해야 한다. 복장뿐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권리도 제한돼 있다. 이혼이나 자녀 양육권을 행사할 때도 여전히 남성 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다만,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집권 이후, 여성들에게도 변화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2017년 9월, 사우디 국왕은 여성의 운전을 전격 허용했다. 사우디의 여성 운전 금지는 이슬람법이나 실정법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조치였다. 사우디 정부는 운전과 관련해 후견인 제도의 적용도 제외했다. 기존에는 여권 발급이나 해외여행에 남성 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했지만, 운전만큼은 차량 소유주의 동의 외에 후견인의 승인이 필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우디에서 여성의 운전이 허용되자, 보수적인 문화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기동성이 높아지면서 혼자 쇼핑몰을 찾는 여성들이 늘었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는 가계 소득 증가로 이어졌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한류에 대한 열기도 더해지며, 방탄소년단(BTS)은 비(非)아랍권 가수로는 처음으로 수도 리야드의 킹 파드 인터내셔널 스타디움 무대에 오르게 됐다.

따뜻한 환대 문화가 중동 전역에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느껴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변화는 서서히 시작된 것이다. 사우디 한 현지인은 "한류 스타 공연장에서 자유로운 복장의 여성들이 관람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빈살만 이후, 사우디 여성에 대한 제한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강승구기자 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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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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