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지난 1월 CES 2025에서 공개한 HBM3E 16단 제품 모형도. SK하이닉스 제공.
미국과 중국 기업들이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분야에서 국내 기업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혀 오고 있다. 중국 CXMT를 비롯해 인텔과 소프트뱅크 연합 등 글로벌 후발 업체들이 잇따라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으며 추격 의지를 나타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CXMT는 현재 시장 주력 제품인 HBM3E(5세대) 제품을 오는 2027년까지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 일정이 현실화 되면 SK하이닉스·삼성전자와의 기술 격차는 2~3년 이내로 좁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CXMT는 지난해부터 범용 D램을 중심으로 입지를 빠르게 넓히고 있다. CXMT의 D램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22년까지만 해도 1% 미만에 머물렀으나, 올해 말에는 10% 수준까지 상승했다. 10년 넘게 이어졌던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의 '3강 체제'를 위협할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CXMT가 최신 D램 양산에 성공한 상황에서 TSV(실리콘 관통 전극) 등 패키징 공정 역량도 기르고 있어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HBM 시제품을 내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메모리 기업 인텔도 일본 소프트뱅크와 손잡고 HBM 대체 기술 추격에 나서고 있다. 일본 매체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양사는 오는 2027년 시제품 개발을 목표로 HBM을 대체하는 스택 메모리 개발에 착수했다. 이 제품 개발은 '사이메모리'라는 양사의 합작 법인이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후발 업체들의 기술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선 '하이브리드 본딩' 기반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서둘러 상용화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칩과 칩 사이를 정밀하게 접합하는 차세대 패키징 기술이다.
SK하이닉스의 어드벤스드 패키징 방식인 MR-MUF에 비해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발열은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기술은 고스택 구조와 저전력 구현이 필수적인 차세대 HBM 개발에 적합한 패키징 기술로 꼽힌다. 업계에선 하이브리드 본딩 없이는 HBM4E(7세대) 제품 구현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주승환 인하대 제조혁신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HBM2(2세대) 시장에 이미 진입한 만큼, HBM3E 8단 적층 단계까지는 빠르게 추격해올 가능성이 높다"며 "HBM3E는 하이브리드 본딩 없이도 구현 가능한 수준이어서 따라잡기가 비교적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기업과의 격차를 유지하려면, 정부가 하이브리드 본딩용 장비 및 공정 기술 개발(R&D)을 선제적으로 지원해 국내 장비 기업이 차세대 시장을 조기에 선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며 "이러한 기술 경쟁을 SK하이닉스 등 개별 기업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