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만명 이용 코빗 12시간 멈춰 실행되지 않은 손해 보상 못해 거래소 안정성 도마위 올라
[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습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회원수 2000만명이 넘는 온라인 서점 예스24가 해킹으로 6일간 멈춰서자 모든 회원에게 5000원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하기로 했다. 책을 사지 못하거나 티켓, 이북을 사용하지 못한 이용자들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조치다.
거의 일주일간 보고 싶은 책을 보지 못한 피해에 대한 보상이 5000원이라면, 팔고 싶은 코인을 팔지 못한 피해보상 금액은 얼마가 될까.
지난 16일 회원수가 77만명인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이 12시간 동안 멈춰섰다. 코빗은 '네트워크 전산 상 오류'라고 설명할 뿐, 명확한 원인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거래가 재개된 지 이틀이 지났지만 피해보상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동안의 사례를 보면 사실상 피해보상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버젓이 버티고 있는 주식시장에서도 거래중단 사태에 대한 피해보상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현지 중개기관 문제로 해외주식 주간거래가 멈춰서고, 이후 국내 증권사들이 시스템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연되면서 정규장에서도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됐다.
하필 그 날은 글로벌 주식시장이 폭락한 날이었고, 투자자들은 증권사 시스템 오류로 장세에 대응하지 못했다며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금융당국은 민원이 접수된 총 피해액이 6300억원이라고 밝혔지만, 증권사들은 단서 조항에 명시된 과실이 없어 손해배상 책임도 발생하지 않는다며 피해보상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사고 발생 전 1주일간 코빗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92억원 수준이었다. 하루의 절반을 멈춰섰으니 거래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금액이 96억원 수준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코빗 거래가 중단됐던 16일 오후 2시 1억4483만원이었던 비트코인 가격은 거래가 재개된 다음날 오전 3시 1억4640만원으로 올랐다. 같은 시간 동안 엑스알피(XRP·리플)는 6% 가까이 상승했다.
누군가는 그 시간에 가격이 오른 코인을 사고 싶었을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격이 떨어진 코인을 팔고 싶었을 수 있다. 거래되지 못한 96억원에는 이 같은 사연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런 '실행되지 않은' 손해는 피해보상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동안 증권사 시스템 오류로 인한 피해보상도 해당 시간에 매수나 매도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취재 과정에서 법률 전문가에게 이 같은 피해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증명할 수 없고, 만약 이를 인정하면 '거짓 피해자'들이 불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서 납득했다.
투자자에게 피해보상을 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이런 사태를 유발한 회사에 대한 처벌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이전 미국주식 주간거래 중단사태 이후 처벌을 받은 증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이번 사태로 우리나라 가상자산 거래소의 안정성이 또 한 번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그동안 해킹과 거래중단 같은 큰 일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어느새 가상자산 거래량이 코스피 거래량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오류를 주식시장 중단 만큼의 큰 일로 받아들일 때가 됐다는 의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