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철강업계가 탄소중립 전환과 보호무역 강화라는 복합적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일본과 한국이 미국 시장을 겨냥한 전략에서 확연히 다른 길을 택했다.
일본은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미국 내 시장 진입과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반면, 한국은 현지 직접 투자 기반의 '내재화 전략'으로 점진적인 확장을 꾀하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 철강업체들은 각기 다른 접근 방식으로 미국 시장 공략 전략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철강 업황 불황과 대외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이 같은 전략 차이가 향후 어떤 성과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일본제철은 일본 제조억 역사상 최대 수준인 141억달러(약 19조원)를 투입해 미국의 대표 철강기업인 US스틸을 인수하며 전격적인 M&A 전략을 단행했다. 이로써 일본제철은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함과 동시에 자국 중심의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글로벌 생산·판매 네트워크를 강화하게 됐다.
이번 인수로 일본제철은 연간 조강 생산능력 약 8600만톤을 확보하며 R&D와 친환경 공정 분야에서도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미국 정부가 '국가안보 예외 조항(황금주)'을 적용해 이사회 구성에 참여하고 핵심 경영진을 미국 국적자로 제한하는 등 외국계 자본에 대한 견제 장치를 마련한 데다가, 미국 내 노동조합의 반발과 현지 정서, 통합 과정에서의 조직 관리 리스크는 향후 과제로 부각된다.
반면 한국은 직접투자 방식으로 미국 시장 공략의 해법을 모색 중이다. 최근 포스코그룹이 현대차그룹과 함께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건설될 자동차 강판 특화 제철소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하며 진출 전략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주도하는 해당 프로젝트는 총 58억달러(약 8조원)가 투입되는 대형 투자로, 원료부터 열연·냉연 생산까지 가능한 일관 공정을 갖춘 친환경 제철소가 구축된다. 연간 생산 능력은 약 270만톤으로, 전통 고로 대비 탄소 배출이 낮고, 고강도 강판 생산에 최적화된 구조다. 포스코는 이 제철소를 통해 미국과 멕시코 지역에 자동차 소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되며 글로벌 완성차 고객과의 연계를 확대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스코는 이미 멕시코 자동차강판 공장(Posco-Mexico)을 비롯해 북미 각지에 철강 가공센터를 운영 중으로, 이번 합작을 통해 북미 전역을 아우르는 생산-공급망 체계를 보다 유연하게 구축하게 된다. 현대차그룹 역시 포스코의 참여를 통해 투자 부담을 완화하고, 철강 소재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양사는 이차전지소재 분야에서도 협력하며, 전기차 전환기 이후 EV시장의 구조적 수요 증가에 공동 대응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일본과 한국의 전략이 각자의 산업 구조와 지향점에 따라 '합리적 선택'이지만, 장단점은 뚜렷하다고 분석한다. 일본제철의 M&A는 단기간 내 미국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생산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전략이지만, 동시에 외부 변수에 민감하다는 지적이 언급된다. 미국 정부의 규제 강화와 현지 노조의 반발, 조직 문화 통합의 어려움 등이 향후 성과 달성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외형 확대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현지 규제 환경에 적응하고 신뢰를 축적하며 기술 중심의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일본과 한국이 어떤 전략으로 미국 내 '핵심 파트너'로 자리 잡을지는 향후 수년간의 실행력에 달려 있는 듯하다"며 "어느 쪽이 시장의 신뢰와 지속 가능한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수년 내 판가름 날 전망"이라고 말했다.양호연기자 hyy@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