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 튀르키예 귀블락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AP 연합뉴스
이란 국민들이 국경을 넘어 튀르키예 귀블락으로 넘어오고 있습니다. AP 연합뉴스


이란 서북쪽 바자르간에 접해 있는 튀르키예 동부 마을 귀블락. 이곳에 멈춰 선 낡은 차량들 곁에 이란 사람들이 몸을 웅크린채 앉아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국경을 넘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더 이상 일상을 돌아볼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은 오직 '살아남는 일'이 우선입니다.

17일(현지시간) 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거센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이란에서 포화를 피하기 위해 교외 지역이나 이웃 국가 튀르키예 등으로 피란을 떠나는 주민들이 늘고 있습니다. 소셜미디어(SNS) 등에는 이란을 빠져나가려는 피란민들이 튀르키예 국경으로 몰리고 있는 사진과 게시글 등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이 시작되자 이란 당국은 테헤란의 공항 등 영공을 사실상 폐쇄했지요. 하늘길이 막히자 육로로 대거 피란을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공세가 집중된 테헤란에선 많은 피란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테헤란 시내와 인근 도로는 피란 행렬로 극심한 교통 체증이 발생하고 있으며, 시내 주유소에는 기름을 채우려는 차량으로 긴 줄이 생겨났습니다. SNS 등에 올라온 이미지를 보면 테헤란 도심에서 북부 카스피해 연안의 소도시 찰루스 등을 잇는 도로에는 차량이 몰려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대조적으로 테헤란 시내로 들어오는 방향의 도로는 텅 비어 있습니다.

바자르간에서 국경을 넘어 귀블락으로 넘어온 이란 시민 시린 탈레비는 "공습이 잦아들 때까지 당분간 튀르키예에 머물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란 서부 우르미아에서 왔다는 그는 "테헤란에서 자녀와 손주 등 나머지 가족들도 넘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나는 안전을 위해 이곳에 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1∼2개월 안에 모든 것이 끝나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토로했습니다.

귀블락 국경에서 활동하는 한 버스 운전기사는 "열흘 전만 해도 쇼핑이나 관광을 하러 온 이란인을 하루에 3∼5명 정도 태웠지만 이제는 하루 최소 서른 명의 이란인들이 내 차를 탄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들은 '우리는 안전하지 않으며 여기 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한다"면서 "대부분은 튀르키예를 통해 유럽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전했습니다.

이와함께 테헤란의 병원들은 쏟아지는 부상자들로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도심 곳곳에서 이뤄지면서 테헤란의 주요 병원 응급실에는 미사일 파편에 맞거나 화상을 입은 사람, 폭발 충격으로 내출혈이나 사지 골절을 입은 이 등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남녀노소, 폭격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시신까지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밀려오며 의료진도 지쳐가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 병원의 한 의사는 "내원자들은 걸음마를 하는 아기부터 청소년, 성인, 노인들을 망라한다"며 "피를 철철 흘리는 엄마들이 미사일 파편에 다친 자녀들을 데리고 들어오기도 하는데 이들은 아이를 내려놓은 후에야 자신들 역시 다친 것을 인지할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튀르키예는 이란 시민들에 관광 등의 목적으로 90일간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으며, 차량이나 도보 등 육로로 국경 간 이동이 가능합니다. 튀르키예 당국은 이렇게 이란인들에게 문을 열어두고 있지만, 정치적 불안정성과 안보 우려로 인해 신중한 기류도 감지됩니다.

튀르키예 당국은 이란에서 들어오고 있는 정확한 입국자 수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번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자국에 이란 난민이 대거 유입되거나 안보가 위협받는 등 전쟁의 불똥이 튈까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라고 AP는 전했습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박영서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