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거대한 캔버스 위에 페인트를 뿌리는 방식으로 인간의 어둡고 불안한 내면을 묘사, 20세기 세계 미술계의 상징으로 우뚝 선 사람. 바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1912 ~ 1956년)이다. 그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마루 바닥에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드리핑'(dripping)이란 파격적 기법으로 20세기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로 꼽힌다.

잭슨 폴록, '가을 리듬(넘버 30)'. 1950년. 캔버스에 에나멜 페인트. 266.7 × 525.8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잭슨 폴록, '가을 리듬(넘버 30)'. 1950년. 캔버스에 에나멜 페인트. 266.7 × 525.8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가을 리듬(넘버 30. Autumn Rhythm·Number 30)'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바닥에 밑칠을 하지 않은 거대한 캔버스를 놓고 그 위에 깡통에 담긴 가정용 에나멜 페인트를 붓거나 흘리며, 막대기와 무거운 붓 등을 사용해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저명한 평론가인 해롤드 로젠버그는 이를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 불렀다. 캔버스를 '격투기장'으로 여긴 로젠버그는 이 경기장 안에서 작가는 고독한 검투사의 작업을 해야 한다며 완성된 그림보다는 작업 과정과 행위가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로젠버그는 회화를 제작(making)이 아니라 행동(doing)으로 간주, 미술 개념 자체를 바꿨다. 그렇다면 폴록의 작업은 마땅히 '액션 페인팅'이라 불러야 한다고 했다.

폴록은 '무의식의 자동기술'로 일컬어지는 드리핑 기법을 통해 시대적 상처와 개인의 트라우마를 담아냈다. 얼핏 보면 단순한 색채의 뒤엉킴이지만, 관객들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제각각인 색채의 혼합은 파동을 일으킨다. 마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듯 페인트를 퍼붓는 손의 움직임에 따라 '기록된' 그림 안에는 인간의 기쁨이나 슬픔, 놀람, 분노 등이 표현돼 있다. 경제 공황과 2차 대전이 남긴 난세에서 폴록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이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휘갈겨 놓은 듯 보이지만 폴록은 나는 나의 감정들을 설명하기 보다는 표현하길 원한다…. 나는 물감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시작과 끝이 없는 것처럼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우연을 사용하지 않고 물감을 흘리는 순간마다 영감과 비전에 따라 직관적 결정을 내린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엔 우연의 무질서 가운데 미적 질서가 존재한다. '우연과 질서 간 긴장과 대립'이야말로 폴록 작품의 핵심이다.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 그림이 처음 전시됐을때 시사 주간지 타임은 "혼돈. 조화의 결여. 구조적 조직화의 전적인 결여. 기법의 완벽한 부재. 그리고 다시 한 번 혼돈"이라는 한 평론가의 비평을 인용해 혹평한다. 하지만 그후 이 작품은 세계적인 명화 반열에 올랐다.

추상표현주의는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지던 1940~1950년대에 탄생한 미술 양식이다. '추상'은 회화의 형식을, '표현'은 그 내용을 의미한다. 추상표현주의는 전통적인 미술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법과 재료를 탐구했다.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행위(움직임)를 중시하거나, 캔버스에 물감이 스며들게 하는 마크 로스코의 기법들이 대표적이다. 미국 3대 미술관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립한 구겐하임 가문의 페기 구겐하임이 폴록을 비롯한 막스 에른스트와 앙드레 마송 같은 작가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이들의 그림은 유럽 미술로부터 독립된 새로운 것이었다.

'푸른 기둥들'. 1952년. 212.1 × 488.9 cm.
'푸른 기둥들'. 1952년. 212.1 × 488.9 cm.


폴록은 와이오밍주 코디에서 다섯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으로 상담까지 받아야 했던 문제 소년이었던 그는 네이티브 아메리칸 문화에 흥미를 느꼈다. 로스앤젤레스의 미술고등학교에서 조각과 회화를 공부했으며, 1929년 뉴욕으로 건너가 1931년까지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토머스 하트 벤턴으로부터 배웠다. 파블로 피카소와 호안 미로 등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작품,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 멕시코 벽화가들의 작품들이 그의 관심사였다. 1935년 작가 활동을 시작해 추상화로 전환한 것은 1940년부터다. 움직이면서 작업한다고 해서 '액션 페인팅'으로도 불리는 '드립 페인팅' 기법은 멕시코 벽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땅에 그림을 그리는 인디언들의 모습에서 착안, 캔버스를 바닥에 눕혀놓고 작업을 하기 시작한다.

멕시코 벽화 예술가들의 영향을 받은 폴록은 초현실주의와 정신분석학자 융에 경도됐다. 대상을 단순화해 입체적으로 표현한 피카소의 큐비즘적인 요소를 받아들이고, 칸딘스키의 추상화를 따라 했다. 이렇게 창안한 드리핑 기법으로 인해 폴록에겐 '잭 더 드리퍼'(Jack the Dripper)라는 별명이 생긴다. 미국의 악명높은 연쇄 살인범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의 패러디다.

폴록의 드리핑은 △서부 인디언 △멕시코 벽화운동 △초현실주의 등 3가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형형색색 모래를 땅에 뿌려 그림을 그리던 나바호족처럼 서부 인디언의 모래그림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 멕시코 벽화운동은 캔버스와 유화물감을 활용한 이젤 회화를 죽어가는 부르주아 문화의 낡은 관습으로 여겼다. 초현실주의의 창시자 앙드레 브르통은 머리에 떠오르는 무의식적 문장을 생각할 겨를 없이 그대로 받아 적는 '자동기술법'을 중시했다. 이를 그림에 적용시킨 것이 앙드레 마송의 '자동 드로잉'이다. 폴록의 드리핑 기법은 이 '자동 드로잉'을 빼닮았다.

폴록의 작품은 비싸게 팔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6년 소더비 경매에서 '넘버 5'(1948)는 1억4000만달러에 팔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 하나가 됐다. '넘버 17A'는 2015년 2억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폴록은 명성이 최고점에 도달했던 1956년 44세의 젊은 나이에 뉴욕 교외인 서퍽 카운티 스프링스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영화배우 제임스 딘처럼 그는 전설이 됐다.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로는 에드 헤리스가 제작·주연·감독을 맡은 '폴록'이 있다.

폴록에 이르러 미국의 미술은 유럽 영향에서 벗어나 세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 폴록은 미니멀리즘, 팝아트 등 현대 미술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베스트셀러 '미학 오디세이'의 저자이자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현대 예술은 형상의 빈곤과 관념의 과잉이 지배한다"며 "작품의 바탕에 깔린 눈에 보이지 않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감상하기 힘들다"고 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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