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사회 곳곳 생태계 파괴 현상 진행, 성장성과 역동성 동시에 추락
'두 나라 현상' 극심… 文 이어 尹 정부에 이르며 양극단 분열 구도 형성
李, 독점 이익 카르텔 깨고 실사구시로 인재 쓰면 역사에 큰 점 찍을 것
시장 경제와 사회안전망 정책 균형점 찾고 현 국가신용등급 꼭 지켜야
中과 공존해야 하지만 자강력 높여야… 한·미·일 협력 깨는 건 자살골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이슬기기자 9904sul@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이슬기기자 9904sul@
[]에게 고견을 듣는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우리 사회는사회 전 부문에서 생태계의 침하 현상이 진행되며 역동성과 성장성이 동시에 하락하고 있습니다. 태어날 것은 덜 태어나고 소멸돼야 할 것은 소멸되지 않는 '좀비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성과를 거두려면 외환 위기 당시 김대중(DJ) 대통령처럼 생태계 복원 마스터 플랜을 내놓고 국민들에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합니다."

17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정덕구(77) 니어재단 이사장은 "이 대통령이 DJ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사회 곳곳에 누적되어온 한국 문제군을 창조적으로 혁신하고 이를 실행할 실사구시적 인재를 쓰면 역사에 큰 점을 찍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우리 사회는 미래를 위한 도전정신이 사라지고 자기파괴의 과정에 진입해 있다며 일본처럼 무력감이 퍼지며 좀비형 경제가 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와 관료 등 공공부문의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규제는 더 깊어지고 기업이 누적된 정치 비용, 사회 비용을 짊어지고 힘겹게 외국과 경쟁한다고도 했다. 이같은 국가 거버넌스의 위기는 국가 사회의 문제 해결 능력을 약화시켰고 '한국 문제군'은 더욱 누적되었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특히 진영 간 대결이 극심해 양 극단화된 결과 나타난 '두 나라 현상'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정 이사장은 우리 사회가 역동성과 성장성을 되찾으려면 또 한번의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답습한다면 그것은 죽는 길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에 있어선 중국과 공존해야 하지만 자강력을 높이는 게 급선무라며 한미일 협력을 깨는 건 생존 터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며, 자유민주 진영을 버리면 국제사회의 유랑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이사장은 배재고와 고려대 상대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1971년 제10회 행정고시에 합격,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정통 경제관료로 외환위기때 대(對) IMF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고 김대중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의 권유로 2004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2년 후 의원직을 중도 사직하고, 2007년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인 니어재단(NEAR)을 설립했다. 그 후 20여년간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을 연구해왔다.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중국의 대표적 지식인들과 교류를 해오며 깊은 교분을 쌓아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외환위기 징비록', '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이성적 친구 감성적 타인', '키움과 나눔을 넘어서' 등의 저서가 있다.

대담 = 강현철 논설실장

- 국민주권정부가 출범했습니다. 하지만 대내외 여건은 만만치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어떤 상황이라고 보십니까?

"경제뿐 아니라 광범위한 분야에서 생태계 파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가 부족했던 지난 대통령들이 엮어낸 잃어버린 20년의 역사였습니다. 생태계적 파괴 즉 가계, 기업, 그리고 그걸 둘러싸고 있는 정치, 사회, 교육, 인물과 심지어 언론 생태계까지 더이상 내려갈 수 없을 만큼 침하된 상태입니다. 대한민국을 지탱해온 하부구조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나 국가나 생성하고 성장하고 노화돼 소멸하면 재생성되는 순환체계가 잘 운행되어야 합니다."

- 말씀하신 대로 말만 무성하고 실행은 없는 무기력 사회의 조짐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왜 이런 사회가 됐을까요?

"국민들이 이기적이 됐어요. 모두가 개인의 이익만을 보고 달립니다. 공동체와 개체의 관계 방정식이 해체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정치가 만든 것입니다. 지난 30여년을 산업화 세력과 운동권 세력이 생각은 하나도 안바꾸고 사회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소멸돼야 될 세력들인데 소멸하지 않은 겁니다."

- 왜 정치에서 소멸돼야 할 세력이 소멸되지 않는 겁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우파 산업화 세력이나 운동권 세력 모두 변화에 맞춰 새로운 것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혁신을 게을리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진 사회로 이행하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소멸돼야 한국에는 선진국 세력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후예들이 소멸되지 않고 남아 땅뺏기 싸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결과 국가 거버넌스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정치·정책 프로세스의 생산성이 가장 떨어지는 나라가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공공부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그들의 영향력은 줄지 않았습니다. 관료의 역할 대신 정치가 전권을 휘두릅니다. 예전엔 그래도 관료사회가 향도 노릇을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후선에 서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이상이 있으면 얼리 워닝(early warning·조기경보)을 내리고, 문제가 있으면 달려들어 해결하는 세이프 가드 기능이 김대중 대통령때까지만 해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관료들이 세종시에 유폐되고 시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 언론과 기업의 생태계도 침하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언론의 사명은 인포머티브(informative·정보제공)와 인베스티게이티브(investigative·비리감시)인데, 인포머티브는 부정확하고 인베스티게이티브는 역량이 모자랍니다. 정치·정책프로세스의 생산성이 바닥을 치면서 민간부문에 엄청난 짐이 돼 버렸습니다. 이 엄청난 사회비용과 정치비용을 기업들이 양발에 쇳덩이처럼 달고 질질 끌고 가고 있습니다. 미래를 향한 R&D(연구개발)나 투자를 할 마음을 못갖는 겁니다. 한국에서 더이상 기업을 하는 것이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한 건 이념 정치가와 반시장 세력들입니다."

- 기업의 생태계는 어떻게 취약해진 겁니까?

"언제부턴가 기업들이 스스로에 대해 의문부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오래 기업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핵심 이유는 정치가 기업을 보는 잣대가 이념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전사(戰士) 역할을 해야 할 기업들이 이념의 잣대를 맞추려니까 도저히 생산성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겁니다. 최근 20년 중 전반부는 중국 특수로 먹고 살았어요.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초기까지 이런 착시 현상들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지 못했습니다."

- 가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가계의 생태계는 가계소득, 가계비용, 가계의 자산과 부채, 연금 미래소득 등 다이아몬드 형태로 형성돼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의 성장성과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이 4가지 모두 지속적으로 수축돼 왔어요. 지난 10여년간 좋은 일자리가 줄고 가계 비용과 가계 부채는 급증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에는 자영업을 중심으로 소상인들이 연쇄 도산하는 등 집중 타격을 받았습니다. 기업 생태계는 새로운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답습과 현상 유지 분위기가 만연되었습니다. 게다가 경쟁관계가 복잡해졌습니다. 중국과 대만이 치고 올라왔습니다. 대만의 진보정당인 민진당은 창조적 파괴의 길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좌우 이념 경쟁 속에 반기업 정서가 팽배한 가운데 기업가들이 자주 검찰, 법원에 드나들며 사업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이러니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초격차 유지가 어려운 겁니다."

- 두 나라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요?

"두 나라 현상의 첫번째는 간이역 현상입니다. 고속열차를 타고 목적지에 가보니까 간이역, 중간역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 간이역에 살던 사람들이 보상 심리가 폭발하여 자분을 내놓으라고 다 들고 일어나는 겁니다. 이들을 정치권이 부추겨 분노를 조장합니다. 그리고 팬덤화합니다. 그들이 모두 표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현상은 양 극단화의 결과입니다. 양 진영이 극좌, 극우로 치우치며 시계추 운동을 합니다.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는 길은 가운데에 있습니다. 경제로 보면 바로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의 균형점을 찾는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미래 지향적인 큰 청사진을 내놓고, 무릎 꿇고 국민 여러분, 지금 미래 세대를 위하여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을 제가 하겠으니 고통 분담을 해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공공부문 연구개발 투자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과학기술 생태계가 침하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업 생태계는 과학기술 생태계와 연결돼 있으며, 과학기술 생태계는 대학 교육시스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 대학은 10여년간 등록금이 동결된 후 정체되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대학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배하는 겁니다. 기초과학기술 개발은 공공부문에서 해줘야 합니다. R&D에 GDP 대비 세계 5위의 돈을 쏟아붓는데 연구계의 기득권 세력에게 나누어 주다 보니 미래를 위한 장기 플랜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과학기술 생태계는 망가지고 새로운 첨단 기술이 창출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의 생태학자인 유발 하라리가 한국 보고서를 냈어요. 압축 고도화의 금메달 리스트가 그 성과를 국민 행복으로 연결시키는 데 낙제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된 5년 단임 정치의 학습효과가 모든 시야를 단기화해 버렸습니다. 하라리는 이를 '한국 문제군'이라 했고, 저는 '한국 생태계의 퇴화'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 정치권의 반시장주의, 반기업주의에 대한 비판도 강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 세력들은 반시장 정책을 펴왔습니다. 저는 이재명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이런 정책을 답습한다면 그것은 죽는 길이라고 봅니다. 이재명 정부가 갈 길은 김대중 대통령의 전반부를 벤치마킹하는 겁니다. 김 대통령은 외환위기를 수습하고, 4대 부문 개혁을 성공시켰습니다. 그처럼 파괴된 생태계를 어떻게 복원시킬 것인지 마스터 플랜을 내놔야 합니다. 또 이재명 정부는 국가신용등급을 꼭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탈진 상태에 빠져 있는 가계 부문을 인공호흡이라도 해서 살려내야 하지만 재정승수를 높이는 것이 과제입니다. 외환위기때 신용등급을 상향시킨 것은 바로 재정 건전성이었습니다. 가계 부문을 살리기 위해 재정 투입을 안할순 없겠지만 대신 다른 부문에서 불요불급한걸 깎아야 합니다. 국가부채에 실링(ceiling·상한선)을 둬야 합니다. 국가 재정은 현재 임계점에 와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큰 그림, 그랜드 디자인을 그리고 사회 각 부문에서 해야 할 일을 정해 놓은 다음 국민들에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합니다."

- 이재명 대통령은 집권기간 구체적으로 무엇을 최우선 해야 합니까?

"크게 세가지입니다. 먼저 우리 사회엔 이익집단들이 중심이 된 카르텔이 있습니다. 이 카르텔을 과감하게 없애야 합니다. 두번째는 심각한 경영위기에 있는 산업, 예를 들어 석유화학이나 건설 등의 구조조정에 즉각 착수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미래기술,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과학기술 생태계를 전면 개편해야 합니다. 우리 역사를 보면 고비가 있을 때마다 창조적 파괴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초기처럼 인재들을 실사구시적으로 써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개혁을 선도하도록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경제에 획을 그은 사람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사탕발라서 국민들을 달래고 더 큰 위기를 잠복시켜 놓고 떠난 대통령이 될지를 냉철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국가 공동체의 이익과 나의 이익이 충돌할때 개인의 이익을 버려야 합니다. 또하나 처음을 나중같이, 나중을 처음같이 초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진보도 보수세력 못지않게 부패 사슬속에 빠져 있습니다. 이를 혁파하겠다는 맹세를 해야 합니다. 이를 잘 지킨다면 질곡같이 정체된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데 역사의 큰 점을 찍게 될 것입니다."

- 중국이 무서울 정도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없겠습니까?

"우리가 중국을 벤치마킹할 수는 없어요. 중국은 아직 과학기술 몇 분야만 빼놓고는 저소득 개발도상국입니다. 그리고 지금 거시 경제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다만 공공부문이 과학기술을 진흥하는 방법은 한국보다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리고 시장형이고. 과학기술진흥에서 중국의 이런 방식은 배울 점이 있습니다."

- 미중과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가야 합니까?

"중국과는 오래된 이웃국가로서 공존의 길을 가야 된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다만 우리의 자강력이 더 세져야 합니다. 자강력 없이는 동맹도, 연합도 없습니다. 북중러 연합체제에 대응해 한미일 공조체제를 갖췄는데 이를 깨는 것은 죽는 길입니다. 아직은 미국이 인권존중,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나라로 우리하고는 '라이크 마인디드'(like-minded)한 나라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포악'하게 행동하지만 일단 트럼프를 잘 달래고 이겨야 합니다. 한미간 보완적 산업 관계를 발전시켜 한미 동맹을 확장해야 합니다. 또다시 중국이나 북한에 경도되면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외로운 유랑아가 될 겁니다."

- 트럼프의 시대, 세계는 어떻게 바뀌고 있습니까?

"전 세계적인 무역구조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산업구조의 변화가 진행 중입니다. 선제적으로 우리의 무역구조, 산업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이는 트럼프 개인하고 해결할 문제는 아니고 우리 내부의 개혁과제입니다. 대외관계에 있어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 신뢰를 얻어야 될 뿐만 아니라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중국 러시아 북한과 잘 지내야 된다는 노선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북중러에 경도되는 순간 우리는 큰 함정에 빠집니다." hckang@dt.co.kr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강현철

기사 추천

  • 추천해요 2
  • 좋아요 1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1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