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를 차지한 종목이 있다. 바로 음식료품 물가다.
구매력 평가(PPP)를 고려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물가 수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식료품·비주류 음료 가격 수준은 2023년 기준 147이다. OECD 평균(100)보다 47% 높은 수준이다. 실제 각국 국민이 느끼는 체감 물가 수준을 비교한 것인데, 스위스가 1등이고 그 다음이 한국이다. OECD 38개국 중 2번째로 높다는 것인데,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식품물가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실제로 마트에 가 보면, 장바구니에 담을 게 없다고 토로하는 주부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초콜릿 등 간식부터 라면, 컵밥, 카레 등 간편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제품까지 안 오른게 없기 때문이다. 장바구니에 조금만 담아도 20만원선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지난해 말 계엄사태 이후 올해 대선 직전까지의 정권 공백기에 식품 물가는 고삐풀린 듯 치솟았다. 연초부터 농심, 오뚜기 등 식품업계가 라면 출고가를 올렸고, 그 결과 6개월간 라면 가격이 5%가까이 상승했다. 컵밥, 카레 가격도 올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작년 하반기부터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을 살펴본 결과, 60여 업체에서 가격 인상을 단행했고, 그 중 가공식품 관련 업체는 34곳으로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여름에 소비가 많아지는 맥주 가격도 치솟았다.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중순 테라, 켈리 등 주요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2.7% 올린 바 있다.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수입맥주는 4캔 1만3000원으로 인상됐다.
이 같은 '가격인상 러시'는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함께 주춤한 듯 하다. 새 대통령이 물가 안정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누구라도 먼저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 회의를 열어 "라면이 진짜 2000원이냐"고 물으며 "물가 문제가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고 있다"고 언급한 이 대통령이다.
하지만 가격 인상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이미 이런 분위기를 깨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오는 18일부터 ㈜한라산이 프리미엄 소주 제품인 '한라산1950(375㎖)'의 편의점 판매가격을 12.5% 인상한다. 하이트진로(참이슬·진로)와 롯데칠성음료(처음처럼·새로) 등 대기업 주류 기업이 소주 시장의 80% 가까이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주 소비 감소라는 악재까지 만난 ㈜한라산이 적자 속 가격 인상을 선택한 것이다. 해당 제품 가격 인상 소식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가격 인상이 다시 시작됐구나"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움직임이 대표 서민술인 일반 소주 제품으로 확산할 경우다. 이것이 현실화하면 국민들의 누적된 '물가 피로도'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 우려스러운 점은 그간 소주 업체들이 주정, 포장재 등 원재료값 부담, 인건비 상승 등 제품가격 인상요인을 지속적으로 언급해 왔다는 점이다. 다른 소주 업체들의 가격 인상이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소주 점유율 1위 기업인 하이트진로의 경우, 지난달 맥주 출고가를 올리면서 소주 가격 인상하는 것도 검토했으나 물가 안정 명목으로 인상을 보류한 상태다. 새 정부와 업계 간 서로를 탐색하는 이른바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어떠한 상황이 펼쳐질지 모를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식품물가를 뒤흔드는 또다른 요인도 우리 경제를 압박해 오고 있다. 이란-이스라엘 충돌이 바로 그것이다. 가격 인상 요인이 하나 더 얹어지는 셈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국제 유가 10% 상승시, 제조업 기업비용은 평균 0.67% 증가할 것으로 분석된다.
생활물가·식품물가 압박 요인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지금, 새 정부에게 허니문은 사치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제는 꽃다발이 아닌 '장바구니'부터 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