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구호품 배급소에서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장례식에서 애도객들이 오열하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가자지구 구호품 배급소에서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장례식에서 애도객들이 오열하고 있습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심화하면서 가자지구 문제가 국제사회의 관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이미 극심한 굶주림 등 위기에 시달리던 가자지구 주민들은 멀어진 관심 탓에 위기 상황이 더욱 심화할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15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직후인 지난 13일부터 가자지구 구호품 배급소가 운영을 중단했습니다. 유엔 당국자 출신의 한 가자지구 주민은 뉴욕타임스(NYT)에 "가족을 먹일 식량 구하기가 갈수록 악몽처럼 변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는 "이제는 모두 '이란' 얘기만 한다. 가자지구는 뒷전이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실제로 전쟁 장기화와 봉쇄로 식료품 공급망이 사실상 붕괴된 데다, 국제 구호물자 반입도 원활하지 않으면서 가자지구의 생필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25㎏짜리 밀가루 한 포대 가격은 무려 350달러, 우리 돈으로 약 48만원에 달합니다. 전쟁 이전보다 수십 배 이상 오른 가격입니다.

가격 폭등은 주민들의 생존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제는 하루 한 끼도 힘들다"고 울부짖고 있습니다. 유엔은 이미 수차례 "가자는 아사 직전의 인도주의 재앙"이라고 경고해왔고, 이제 그 경고는 현실이 됐습니다. 유엔은 가자지구 전체 주민의 93%가 '고도의 식량 위기'라고 진단했습니다.

전쟁 전 대학 교직원으로 일했다는 한 주민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멀어질 경우 "이스라엘이 강한 반발 없이 논란의 여지가 큰 행동을 더 쉽게 감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자비에 아부에이드 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고문도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다고 해서 가자지구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 오늘도 수십명이 죽었다. 딱 하나 달라진 것은 어제보다 관심이 줄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란 문제 해결을 우선하느라 가자지구 휴전 협상을 후순위로 미뤄둘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해체해야만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겠다는 입장이고, 하마스는 "항복은 없다"며 버티는 상황입니다. 양측의 의견 차이를 좁히고 휴전 협상을 타결하려면 국제사회의 중재가 필수이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습니다.

영국 가디언은 가자지구 전쟁을 중단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던 국제사회의 외교적 추진력이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을 계기로 지금 당장은 사라진 상태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14일 유엔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국가 해법' 관련 국제회의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충돌 이후 기약 없이 연기됐지요. 이 회의를 추진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회의가 연기된 데 대해 "현실적인 안보상 이유로 지연됐을 뿐, 가능한 빨리 재개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날짜를 못 박지 못했습니다.

유럽연합(EU)도 사실상 이스라엘과의 자유무역협정(FTA) 격이던 'EU·이스라엘 협력 협정'을 재검토해 그 결과를 이달 말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이 역시 전망이 불투명해졌습니다. 가디언은 "가자지구 전쟁을 두고 이스라엘을 비판하던 국가들도, 이스라엘 국민이 이란 미사일에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와 전쟁에서 국제사회의 밀착 지원이 필수인 우크라이나 역시 관심권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경계심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이 중동 지역의 불안정으로 확산하는 경우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중동에서의 전운 고조가 가자지구의 비극을 가리고,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그림자를 드리우는 모양새입니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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