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옛말에 식자우환이라고 했던가.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걱정이 많은 법이다. 지식인일수록 세상을 비관적으로 본다. 내로라하는 지식인이나 석학 가운데 세상을 밝게 바라보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심리학적 표현으로 '부정성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적지 않은 지식인이 끊임없이 암울하고 답답한 미래를 우리에게 주입한다. 어느 순간 뭇사람까지 비관론자로 물들게 한다. 물론 모든 지식인이 비관론자라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비관론자의 말이 겉으로 보면 꽤 그럴듯해 보인다는 점이다. 때로는 논리적이고 정치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누구든지 쉽게 걸려든다.

세상은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비관론자는 긍정적인 요인보다 부정적인 요인에만 초점을 맞춘다. 경제의 역동성을 무시한다. 비관론자들의 예상대로 움직였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수십 번 망했을 것이다. 비관론자의 논리도 수긍이 갈 때도 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맞지만, 전체적으로 틀린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부정적인 변수를 과다 계상하면서 오류가 생기는 것이다.

가령 가계부채가 많아서 집값이 급락할 것이라는 논리가 대표적인 예다. 2010년 초부터 가계부채 발(發) 집값 급락론이 득세했다. 과도한 가계부채는 그 자체가 우리 경제와 부동산 시장의 위험요인이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많다고 당장 집값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가계부채는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것이다. 이들 성인병은 위험하지만 잘 관리하면 자연수명을 누릴 수 있다. 가계부채도 잘 관리하면 풍선 터지듯이 뻥 터지지 않는다.

시장가격은 여러 변수의 변주곡으로 만들어진다. 호재와 악재라는 변수의 시소게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에두아르도 포터 논설위원은 시장은 노골적인 방법으로 가격이 정의되는 곳이라고 했다. 그리곤 자신의 선입견에 사로잡히면 가치조작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객관성을 상실한 채 주관적인 잣대로 한쪽만 무게를 두면 오판하기 쉽다. 거칠게 말해 시장을 제대로 알려면 생각의 균형추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비관론자로 알려진 한 부동산 전문가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큰 문제는 경제성장률 하락에 따른 수요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집을 살 수요가 부족하니 집값이 곧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말처럼 장기적으로 수요 부족 문제는 주택시장 안정의 큰 위협요인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수요 부족 그 자체만으로 집값이 내려가지는 않는다.

가격은 공급과 수요의 함수이다. 비록 수요가 감소한다고 하더라도 공급이 더 줄어든다면 집값은 오히려 오를 수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값 상승은 수요 감소 요인인 인구 감소보다 주택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더 크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금리, 유동성, 심리도 무시할 수 없다. 주택시장에서 공급은 비탄력적이지만 수요는 탄력적이다. 즉 수요는 안정적이거나 고정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거시경제학자들의 집값 전망이 자주 틀리는 것은 수요의 가변적인 특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요즘 주택 가격형성의 한 축인 수요 쪽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 빌딩을 샀던 부자들이 빌딩보다 고가 아파트에 투자하려고 한다. 경기침체에 공실이 늘어나면서 투자수익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빌딩 투자 수요가 아파트로 이동하면서 인기 지역 아파트값이 고공비행하고 있다.

이처럼 고가 아파트 수요가 늘어나면 전체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도 다른 시장과 차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는 부동산 시장을 두루뭉술한 총론보다 특정 지역과 상품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어떤 지역의 집값은 시장 참여자의 평균적인 견해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그 집을 구매할 수 있는 유효수요의 움직임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업을 하든, 부동산을 사든 비관론자보다 합리적 낙관론자가 성공한다. 물론 맹목적인, 근거 없는 낙관론자는 위험하다. 그래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미국 경영컨설턴트 데니스 웨이틀리는 비관론자는 모든 기회에 숨어 있는 '문제'를 보지만 낙관론자들은 모든 문제에 감춰져 있는 '기회'를 본다고 했다. 세상을 바라볼 때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이성적 밸런스를 유지하라. 무엇보다 세상을 너무 어둡게 보는 지식인은 멀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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