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TV토론 발언' 도마위
제명 국민청원 동의 수 57만명
"혐오 선동가는 정계를 떠나야"
발의 이뤄져도 윤리특위 없어
구성돼도 징계 연계도 미지수
1979년 김영삼 제명사례 유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연합뉴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연합뉴스]


사회 곳곳에 분열이 넘쳐나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국회의원들 간 정쟁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제22대 국회는 출범 당시부터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대화와 협치는 사라지고 의원들 사이에 막말과 비난, 비방만 난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12·3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6·3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양극단으로의 국민 분열은 더욱 심화했고 이에 따른 후유증이 불가피해졌다.

지난달 27일 열린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 개혁신당 대선 후보로 나선 이준석 의원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의 가족을 검증하겠다는 명분으로 여성의 신체에 관련한 폭력적인 발언을 했다. 이 장면은 전국에 그대로 생중계되면서 현재까지 국민들로부터 거센 공분을 사고 있다. 이 의원은 이후 "당시로 돌아간다면 같은 방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지만 파문은 여전하다.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 징계안은 역대 최다 수준이다. 하지만 징계안을 처리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여야 간 이견차로 22대 국회 출범 1년이 넘도록 구성조차 하지 못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가장 시급한 정치·사회적 과제인 '국민 통합'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준석 발언'에 관심 커지는 국회의원 제명= 이 의원을 제명하라는 청원 동의는 열흘여 만에 57만명대를 돌파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를 보면 16일 오전 10시 기준 '이준석 의원의 의원직 제명에 관한 청원' 동의 건수는 57만5000명을 넘었다. 지난 4일 게재된 지 12일 만이다. 이는 지난해 6월 게재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즉각 발의 요청에 관한 청원'(143만4784명 동의)에 이어 국회전자청원 가운데 역대 두번째로 많은 동의를 얻은 것이다.

지난달 27일 대선 3차 TV토론회 당시 이 후보는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에게 여성의 신체와 관련한 폭력적 표현을 묘사하며 "여성 혐오에 해당하느냐", "이런 성폭력적 발언에 대한 기준이 없느냐"고 물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 대통령 장남의 발언 전력을 겨눴다지만 국민적 분노는 잦아들지 않았다.

표현 수위, 2차 가해 시비가 거세지자 이 의원은 이튿날인 지난달 28일 "불편할 국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며 "그에 대한 심심한 사과를 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혐오 선동가 이 의원은 정계를 떠나야 한다", "정치할 자격도 없다"고 비판했고 결국 지난 4일에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이 의원의 제명 청원이 게시됐다.

청원인 임모씨는 "이 의원의 해당 발화는 여성의 신체를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삼는 헌정 사상 유례없는 일"이라며 "후보 검증이란 허구적인 말로 여성 시민에 대한 폭력을 공론장에 공공연하게 전시하며 또다시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확산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차별·선동 행위, 대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발화한 부적절하고 폭력적인 언어, 이후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무책임한 태도는 주권자 시민의 신뢰를 크게 저해하고 국회의원 품위를 손상시킨다"며 국회의원 청렴 의무에 관한 헌법 46조 1항, 국회의원 징계 사유에 관한 국회법 115조 16항 위반으로 이 의원을 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당 청원은 게재 당일 동의 건수 10만명을 돌파하면서 30일 이내 5만명 이상 동의해야 한다는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회부 요건을 가뿐히 충족했다. 일주일째인 10일에는 50만명을 넘어섰다. 이 의원은 지난 11일 한 언론에 "대부분 민주당 의원들조차 제명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며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선 모든 국민들의 목소리는 잘 새겨들어야 되겠다"면서도 "경마식으로 '몇 만 명 돌파' 이런 것들이 국민 전체의 여론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국회의사당. [연합뉴스]


◇징계안 쏟아지는데, 윤리특위 구성도 못해= 이 의원을 제명·징계해 달라는 요청은 국민 청원뿐 아니라 의원들 사이에서도 나왔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지난달 28일 정혜경 진보당 의원 등 21명이 "이 의원은 선거운동을 위해 방송에서 국민을 상대로 특정 성별을 공연히 비하·모욕해 성폭력을 자행했고 이를 시청하던 모든 국민이 성폭력 발언의 피해자가 됐다"며 이 의원의 징계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징계안 발의가 이뤄져도 이를 처리할 소관 상임위인 윤리특위가 꾸려지지 않아 관련 내용을 심사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회에는 이 의원뿐 아니라 다수의 의원에 대한 징계안이 올라와 있다. 국민동의청원에 등록돼 요건을 충족한 것만 추려도 12건에 달한다. 이와 별개로 의원들이 직접 국회에 발의한 징계안은 16일 오전 기준 총 28건이다. 그러나 청원의 경우 모두 소관 상임위가 미확정인 상태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도 각종 징계안이 접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윤리특위는 국회의원의 징계 및 자격을 심사하고자 설치하는 비상설 국회 특별위원회다. 한 마디로 의원들을 징계함으로써 국회 전체의 품위와 도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국회법 155조 제16호는 '국회는 의원이 국회의원윤리강령이나 국회의원윤리실천규범 등을 위반했을 때 윤리특위의 심사를 거쳐 의결로써 징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여야는 그간 윤리특위 위원 14명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두고 평행선을 달려왔다. 민주당은 위원 비율을 여야 의석수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관행상 5대 5로 구성해야 한다고 맞섰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1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11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11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들께서 보시기에 의원들이 잘못하면 징계를 하거나 잘못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데 22대 국회에서 여야 비율 논쟁으로 윤리특위 구성을 못한 것은 의장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라며 "여야 원내대표가 새로 선출되는 대로 윤리특위 구성을 우선 과제로 다루겠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이번에 여야가 바뀌어 윤리특위 구성에 대한 합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며 "이번에야말로 강하게 합의를 요청하고 안 되면 직접 중재를 서서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을 징계할 수 있는 윤리특위가 제때 구성되지 않으면서 극한 대결 구도 속 징계안을 정쟁 수단으로 남발하려는 듯한 움직임도 포착된다. 22대 국회에서는 1년 만에 무려 28건의 징계안 발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지난 21대 국회에서 4년간 발의된 징계안은 53개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20대 국회서 발의된 징계안의 경우 47건으로 50건을 넘지 않았다.

윤리특위 구성을 완료한다고 해도 의미가 있는지에 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윤리특위 제소가 실제 징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은 탓이다. 윤리특위는 동료 의원들의 징계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의원들이 기피하는 대표적인 상임위 중 하나다. 의원들 사이 '제 식구 감싸기'로 대부분 부결 또는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되기 십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 [연합뉴스]


◇설령 징계 이뤄져도 제명 전례 거의 없어= 실제 윤리특위가 구성된 후 제명까지 이뤄진 사례는 손에 꼽힌다. 이 의원을 제명하라는 국민 청원이 수십만을 넘어섰는데도 실제 제명 여부는 불분명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표결 조건이 까다롭다. 무기명 투표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정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셈으로 개헌이나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조건에 필적한다. 특정 정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소수정당 의원을 제명하는 '정적 제거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 것이지만 그 결과 제명에 걸림돌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제명 절차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해당 의원이 징계 이전 사퇴해 실제 제명 처리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 9월 22일 김두한 전 의원이 사카린밀수사건에 항의해 국회 본회의장에 오물을 던진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이효상 국회의장은 김 의원의 징계를 요구했고 국회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명이 결의됐으나 김 의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제명안은 자동 폐기됐다. 2015년 심학봉 전 의원의 경우도 성폭행 혐의로 윤리특위에서 제명안이 의결됐으나 본회의 표결 직전 의원직에서 사퇴해 제명은 실행되지 않았다.

2010년 강용석 전 의원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도 의원직 제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윤리특위에서 제명안이 가결됐으나 본회의에서 제명이 부결된 후 상대적으로 경징계에 속하는 '30일 출석정지'로 결정됐다.

2019년에는 손혜원 전 민주당 의원이 문화재 지구 지정을 미리 알고 가족 명의로 부동산 구매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야당을 중심으로 제명 요구가 있었으나 탈당해 무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의원직은 유지했다.

2023년에는 김남국 전 민주당 의원이 가상자산 대량 보유 및 거래로 이해충돌 의혹과 자금 출처 불투명 의혹에 휩싸이면서 '제명 권고'를 받았으나 표결은 보류됐고 표류한 끝에 폐기됐다.

유일한 제명 사례로는 1979년 김영삼 당시 의원이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유신정권을 비판하며 정권 퇴진을 요구한 게 꼽힌다. 다만 이로 인해 부마항쟁이 촉발하는 등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임재섭·한기호·윤선영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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