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철강 관세가 한국 제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단순히 철강 제품을 넘어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등 철강을 활용한 파생 제품 전반에까지 고율 관세가 적용되며 그 여파가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상무부는 연방 관보를 통해 철강 파생제품 명단에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조리기구 등 가전제품 8개 품목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제품에는 오는 23일부터 최대 50%의 고율 관세가 적용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3월 외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4일부로 이를 50%로 상향 조정하고 대상 품목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가전업체들은 수출 전략 전면 재검토에 돌입했다. 미국 내에서 세탁기 등 일부 제품을 생산하고 있긴 하나, 여전히 멕시코와 한국 등 해외 공장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물량이 많아 이번 조치의 영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공급망을 미국산 철강 중심으로 전환하려 해도 단기간 조달이 어렵고, 상대적으로 비싼 미국산 원재료를 사용할 경우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자동차 산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수입 자동차에 대해 현재 25% 수준의 관세를 추가로 인상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지난달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동월 대비 32.0% 급감한 18억4000만달러에 그쳤고, 현대차의 미국 내 판매 증가율도 전달 16.3%에서 6.7%로 급속히 둔화됐다.
이 같은 여파는 철강 수요 비중이 높은 산업 생태계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국내 철강사들은 수요 부진과 대미 관세 부담이라는 복합 악재에 직면해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기술직 희망퇴직과 사업부 매각 등 생존을 위한 긴축 운영이 현실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고용 불안과 산업 전반의 연쇄 충격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국 산업계가 공급망 다변화와 미국 의존도 축소를 위한 중장기 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가 파생제품의 범위를 광범위하게 설정해 갈수록 많은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며 철강 관세 여파가 예상보다 커졌다"며 "철강과 이를 기반으로 한 제조업 전반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양호연기자 hyy@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