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일 산업부장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 처리를 연기하면서 높아졌던 재계의 기대감이 다시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김병기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가 15일 기자들과 만나 "상법은 워낙 중요하고, 코스피 5000으로 가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법안"이라며 최우선 처리 법안으로 낙점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여당에서 상법개정안 처리를 차기 원내대표단에 위임하겠다고 밝힐 때까지만 해도, 재계에서는 이 대통령이 상법 개정안 처리를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대통령이 지난 13일 5대 그룹 총수 및 경제 6단체장과 간담회를 했을 당시에도 그랬다. 이 대통령은 "정부는 우리 기업인들, 각 기업이 경제성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기 사업을 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 협조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대통령의 말과는 달리 사업보다 소송 대응에 급급할 것이라고 재계는 한결같이 주장한다. 소수 대주주의 횡포를 억제하고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높여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이를 악용해 소송을 걸고 이익을 취하는 것은 '개미들'보다는 조직과 자본이 풍부한 외국계 헤지펀드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00년대 초반 SK 그룹을 뒤흔든 소버린 사태나, 지난 2019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공격과 같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경영권이 취약한 국내 대기업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고 '먹튀'했다.

상법 개정안이 이번 정부의 핵심 공약이라는 점에서 여당 원내대표의 발언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난 4일부터 6거래일 연속으로 코스피 지수는 치솟았고, 지난 13일에도 중동발 악재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장중 2900선을 돌파하면서 '주가 3000'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이런 상승세가 상법 개정안에 대한 개미들의 기대감 덕분이라는 해석은 다소 무리가 있다. 원·달러 환율의 안정과 미국 관세 리스크 완화, 정치적 불확실성 완화 등이 외국인들의 한국 투자를 이끌었다.

문제는 앞으로다. 중동에서의 전운 고조로 국제 유가와 환율이 불안정하며, 기업들의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다. 자동차와 철강, 가전제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폭탄은 당장 2분기부터 현대차·기아와 삼성·LG전자의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소비심리까지 악화일로다. 이 대통령의 말대로 이런 경제위기 시점에서는 기업들이 사업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게 최우선이다. 주주들의 권리 보호를 한층 강화하는 것은 기업이 살고 난 다음의 일이다.

이미 장기 불황에 못 버틴 기업들은 나가 떨어지기 직전이다. 한국은행의 '2024년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외부 감사 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기업(3만4167곳) 중 소위 '좀비기업'이라고 불리는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 100% 미만 기업의 비중은 40.9%였다. 전년(39.0%)보다 1.9%포인트 높아졌다. 영업해서 번 돈으로 은행 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번 통계는 2013년 관련 통계 편제 이래 최고치다.

현 시점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득보다는 실이 더 많다. 투자가 시급한 상황에 대기업들은 경영권 방어에 전념하게 되고, 우수한 기술을 가진 우량 중소·중견기업들은 속속 외국계 자본에 넘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극소수 오너 주주들의 횡포가 여전한 기업도 있고, 주주들의 견제 또한 필요하다. 허나 이는 공정거래법이나 금융 감독당국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정할 수 밖에 없다면 최소한 외국계 헤지펀드의 기업 사냥이나 약탈을 막을 '방패'는 만들어야 한다. 국가핵심기술 지정 기업에 대한 외국계 자본의 의결권 제한 조항 같은 보호장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상법 개정안이 가야 할 방향은 부동산에 몰린 돈을 기업으로 돌리는 동시에 '개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그 과정에서 기업의 가치를 높이도록 해야 한다. 농어촌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황소 개구리'와 '베스'를 들여왔다가 토종 생태계가 멸종할 뻔했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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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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