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하버드 대학에 맹공을 가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캠퍼스 내 반(反)유대주의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 트럼프의 '하버드 때리기'는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전략적 행동이란 분석이다. 하버드대를 향한 공세는 미국 정치가 얼마나 분열과 갈등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청교도의 꿈에서 정권의 표적이 되기까지

하버드대학교는 영국 식민지 시절이었던 1636년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서 설립됐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1732~1799)이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일이다.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목회자 양성을 위해 만들었다. 명칭은 영국 출신의 청교도 목사 존 하버드(John Harvard)에서 따왔다. 그는 사망하면서 자신의 도서 400권과 재산의 절반(약 800파운드)을 기증했고, 이를 기념해 학교 이름이 '하버드'가 됐다.

영국 정부가 만든 대학은 아니지만, 하버드대의 뿌리는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 정신에 있다. 미국 최초의 대학이자, 미국 엘리트주의의 시작점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후 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하버드대는 미국 지성사의 중심이자, 엘리트 양성의 산실로 자리매김해왔다. 하버드대는 예일대, 프린스턴대와 함께 '미국 3대 명문'으로 꼽힌다.

하버드의 영향력은 단순한 대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8명의 대통령, 셀 수 없이 많은 연방 대법관, 수백명의 상·하원 의원,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와 억만장자 창업자들이 이 학교 출신이다. 정치, 경제, 언론, 교육, 인문, 법조 등 미국 사회의 각 분야에서 '지식 카르텔'의 정점으로 기능해 왔다.

막대한 기부금이 이런 하버드대의 위상을 증명한다. 2024 회계연도 기준 하버드대의 기금은 532억달러(약 72조2800억원)에 달한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기금이 많은 예일대(414억달러)와도 큰 차이가 난다.

하버드대는 세계 최대 규모의 대학 기부금을 운용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교수진과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유학생 비율이 약 27%인 하버드는 '글로벌 리더십의 인큐베이터'로 불린다. 이런 국제성과 다양성, 진보성은 하버드대의 자산이지만 지금은 트럼프의 공격 대상이 됐다.

◆지지층 결집 위한 '정치 술수'

트럼프는 하버드대를 향해 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 이면에는 정치적 셈법이 깔려 있다. 하버드를 때림으로써 그는 대략 세 그룹의 지지를 강화하려고 한다.

첫째는 기독교 우파다. 이들은 전통적인 보수주의 가치와 함께 시온주의도 옹호한다. 하버드대에서 벌어진 반(反)이스라엘 시위와 이를 용인한 대학 당국의 태도는 이들의 정서를 자극했다. 트럼프는 하버드대가 "테러를 옹호했다"며 강하게 비난했고, 이는 시온주의적 신념을 가진 기독교 보수층의 박수를 받았다.

둘째는 반이민·반중국 정서를 가진 백인 보수층이다. 트럼프는 하버드의 유학생 수를 문제 삼으며, 백인들이 대학 입시에서 역차별당한다고 감정을 자극했다. 특히 중국인 유학생을 직접 겨냥해 비자 취소 등의 조치를 한 것을 '중국 봉쇄 패키지'의 일환으로 포장했다. 이는 백인 보수층에게 일종의 애국주의적 행보로 비춰진다.

셋째는 반엘리트 정서를 가진 노동자층이다. 이들은 '아이비리그 엘리트'들이 미국을 좌지우지하면서도 현실을 모른다고 여긴다. 트럼프는 "하버드의 30억 달러 보조금을 빼앗아 직업학교에 쓰겠다"면서 자신을 '노동자를 위한 정치인'이라고 표현한다. 하버드의 교풍을 '기득권과 단절된 엘리트주의'로 몰아가며, 자신은 그에 맞서는 '노동자의 대변인'이라는 이미지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결국 트럼프의 하버드 때리기는 감정적 선동을 통해 지지 기반을 결속·강화하려는 정치적 기획이다. 트럼프는 하버드를 단순한 대학이 아니라, 싸워야 할 '이념의 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대중적 동원을 극대화하고 있다.

◆반지성 포퓰리즘, 이것이 미국을 위한 길인가

이런 '정치적 적' 만들기가 대중에게 먹혀들어 표밭을 넓힐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최근 뉴햄프셔대학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하버드가 위치한 매사추세츠 동부 주민의 60%는 여전히 하버드대를 지지하고 있으며, 무당층의 66%도 트럼프의 하버드대 보조금 삭감에 반대하고 있다.

비록 공화당 지지층의 89%는 반대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건 무당층의 움직임이다. 내년 중간선거의 승부는 이들 무당층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번 조사는 트럼프가 공화당 지지층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선거의 승패를 가를 무당층의 마음은 얻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갈등이 아니라, 더 나은 대화와 통합이다. 정치는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트럼프가 여전히 지도자라면, 갈등을 부추길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더욱 굳건하게 할 비전을 제시해야 함이 옳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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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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