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통부가 2026년을 지식 창출과 인력 양성을 추구하는 기초연구의 '질적 고도화'의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다양성 기반의 수월성'이라는 기묘한 목표가 핵심이다. 소규모 과제와 대규모 과제의 배분에 하후상박(下厚上薄) 원칙을 유연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보편성을 추구하는 교육부와의 역할 분담도 강조한다.
물론 새로 출범한 국민주권정부가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한 과기정통부의 질적 고도화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인공지능(AI) 3대 강국' 등 요란한 대선 공약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하면 기초연구 정책도 덩달아 요동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인공지능 쓰나미가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째로 삼켜버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초연구 사업이 연구 논문이나 인력 배출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과기정통부도 인정한다. 실제로 SCI 논문은 2022년 3만9927편으로 3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어났고, 같은 기간 석·박사 인력 배출도 78%나 증가했다. SCI 논문의 질적 수준도 올라갔고, 창업을 통한 경제·사회적 부가가치 창출도 늘어났다. 과기정통부가 지원한 창업 기업의 시가총액이 2025년 3월 기준 7조원이나 된다.
그런데 과기정통부가 엉뚱한 지표를 들고나왔다. 연구비 10억원당 상위 10% 학술지의 게재 논문 수가 2018년 3.6편에서 2022년에는 2.80편으로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의 질적 수준'은 오히려 답보 상태라는 것이 과기정통부의 냉혹한 평가다. 기초연구의 질적 고도화를 들고나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상위 10% 학술지의 게재 논문의 수가 연구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잣대라는 주장은 어떠한 근거도 없는 것이다. 과거 '사업화 성공률'과 같은 정체불명의 통계를 근거로 연구개발사업이 비효율적이라고 깎아내리던 비겁한 패배주의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억지다. 과기정통부의 기초연구 성과에 대한 자의적인 자해성(自害性) 폄하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동안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떼도둑(카르텔) 발언으로 국가연구개발 예산이 17%나 줄어들었던 2024년에도 기초연구 예산은 오히려 531억원이 늘어났다. 2025년의 기초연구 사업비는 2조9315억원으로 국가연구개발 사업에서의 비중이 9.8%나 된다.
기초과학 분야를 대표하는 기초과학학회연합체가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어설프게 포장한 '질적 고도화'가 아니라 위험하게 무너지고 있는 대학의 기초연구 생태계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떼도둑 발언으로 기초연구사업에 날벼락이 떨어진 후에는 기초연구의 과제 수가 1만1829건으로 2023년보다 21%나 줄어들었다. 기초연구를 수행할 의지가 있는 연구자의 수가 2024년 5만6107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는데도 그렇다. 대학교수에게 기초연구 참여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대학의 교수 구성이 크게 변하고 있다. 대학이 급팽창하던 1990년대에 임용된 베이부머 교수들이 젊은 세대로 빠르게 교체되고 있고, 비전임 교수도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2024년에는 비전임이 전임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다. 기초연구 인력의 구성이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의대 블랙홀도 기초연구에는 독약이다. 특히 2024년의 떼도둑 발언으로 가장 심각하게 흔들린 기초과학 분야의 연구실에서는 대학원 학생과 박사후 연구원의 대(大)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자칫하면 기초연구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다양성을 추구하는 사업은 교육부로 떠넘겨버리고, 과기정통부는 자신들에게 더 짭짤한 수월성 과제만 챙기겠다는 부처이기주의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성'과 '수월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다양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수월성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 앞에서는 수월성을 강조하면서 돌아서서는 지역·여성 안배를 외치는 모습도 이율배반적이다. 서울·수도권 사립대에서 시작하는 신진 남성 교수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